1922년 1월 8일 충청남도 아산군 출생으로, 1944년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교를 수료하고 해방 후 1947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49년 중앙대학교 조교수가 되었으며,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24일, 27세의 나이로 해병대 신병으로 입대했다. 연령과 이력이 감안되어 고급하사관 대우를 받아 진해 사관후보생 교육대에 대기하다가 같은해 2월 동래의 육군종합학교 27기로 입교했다.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3개월 간의 견습사관을 거쳐 대위로 승진함과 동시에 해병대 작전국 국장이 되었다. 작전국장 재임 중에는 미 해병대 편성표를 참조한 해병대 발전 3개년 계획 수립의 업무를 맡았다. 휴전 후 해병교육단 교수부장이 되어 1954년 미국 해병대 참모대를 졸업했으며, 1958년 국방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제10대 문교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임명 후 간접침략분쇄, 인간개조, 빈곤타파, 문화혁신 등 4대 문교정책과 대학정비를 단행을 천명했다. 1962년 1월 원대 복귀되었으며, 1963년 2월 준장으로 예편한 후 같은달 공화당 당기(黨紀)위원에 선출되었다. 1963년 6월 오월동지회 중앙상임위원회 학술연구부 위원장으로 지명되었고, 같은달 국방대학원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964년 8월 7일 중앙청 안에 마련된 국방부 기구 전사편찬위원회 초대위원장으로 취임하여 1970년 4월 30일까지 재임했다. 전사편찬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전쟁사 편찬에 착수해 각 군의 자료, 참전용사 및 민간인들의 증언과 국내외 관련서적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 1967년 『한국전쟁사』 1권을 발표를 시작으로 매년 1권 씩 책을 발간했다. 또한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전사를 집필하기 위해 1966년 2개월 간 베트남을 시찰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등 『파월 한국군전사』를 발간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1967년 1월 행정개혁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촉되었으며, 1968년 9월 부산대학교 법학과에서 「한국 사관학교생도의 사회관 연구」라는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11월부터 1970년 12월까지 건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재임 중이던 1970년 3월 한국대학축구연맹회장을 지냈다.
1974년과 1976년 대한교원공제회 제3대, 4대 이사장을 연임했다. 대한교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1977년 10월 10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1961년 사상계에서 펴낸 『전략론』과 1967년 탐구당에서 출판한 『한국의 군사력과 안전보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