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10월 9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출생으로, 1930년 경기공립중학교를 졸업했다. 1937년 경성지방관리 양성소를 졸업하고, 1937년부터 전라북도 익산군과 군산부, 전라북도 도농업과에서 근무하다, 1945년 6월 무주군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서 활동했다. 무주군 제헌국회의원인 신현돈(申鉉墩)이 1948년 11월 전라북도지사로 취임하여 의원직이 공석이 되자 1949년 1월 무주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이 된 후 1949년 2월 농지개혁에 관한 임시조치 법안에 찬성했으며, 같은 해 5월 국회에서 파견한 전라남도 일대 민정조사반으로 활동했다. 6월에는 국회의원 141명이 주한미국 군사고문단 설치를 환영하는 성명서 발표에 동참했다. 9월 일민구락부(一民俱樂部)에 가입했으며, 10월 개정된 국회법에 따른 상임위원회 개선으로 교통체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1950년 1월 내각책임제로 개헌하는 헌법개정안에 동의했으며, 4월 조병옥(趙炳玉)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4월 ‘신탁은행 부정대부(貸付)사건’ 조사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한국전쟁 때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