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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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참여관, 전라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0년 7월 10일
사망 연도
1976년 4월 22일
출생지
평안남도 강동
관련 사건
황국신민서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김대우는 일제강점기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참여관, 전라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0년에 태어나 1976년에 사망했다. 1919년 경성공업전문학교 대표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 규슈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에 근무하였다. 1934년 내선일체에 동조하는 시중회(時中會)에 참여하였다. 1936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으로 민족말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였다. 특히 황국신민서사를 제정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였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었다.

정의
일제강점기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참여관, 전라북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1900년 7월 10일 평안남도 강동에서 출생했다. 일제강점기에 박천군수,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참여관, 전라북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76년 4월 22일 사망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3년 2월 평안남도 강동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1917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3월 경성공업전문학교 광산과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서 규슈[九州]제국대학 공학부 응용지질학과를 1925년 3월에 졸업했다. 경성공업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경성공업전문학교 대표로 3 · 1운동에 참여했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규슈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해 1926년 2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지방과 속 및 임야조사위원회 서기를 겸직했다. 1928년 2월 평안북도 박천군수에 임명되었고, 11월 쇼와[昭和]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30년 2월 평안북도 내무부 도이사관으로 승진해 3월부터 평안북도 내무부 산업과장으로 일했다. 1932년 2월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물산진열관장을 겸했다. 같은 해 10월 조선곡물상조합연합회 경상남도 협찬부부회장, 11월 경상남도 농촌지도위원회 간사로 위촉되었다. 1933년 경상남도 산업장려관도 겸했다.

1934년 1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 사무관으로 승진해서 조선사편수회 간사를 맡았다. 1934년에는 중추원 통역관과 서기관도 겸했다. 그해 8월 최린(崔麟)천도교 신파가 중심이 되어 ‘내선일체(內鮮一體)’에 동조하는 시중회(時中會)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35년 12월 평양에서 장로교 대표 이승길(李承吉), 김동원(金東元) 등과 신사참배문제와 관련한 간담회를 가졌다. 1936년 5월에는 명륜학원 학감 사무취급과 제생원 서무과장 사무취급을 겸직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 회원, 고적조사위원회 위원 및 간사, 조선간이생명보험심사회 위원, 농촌진흥위원회 위원 및 간사, 과학지식보급회 고문, 9월에는 임시재해대책조사위원회 간사로 위촉되었다.

1936년 10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으로 직책이 변경되었다. 1937년 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건설위원회 간사, 6월 금강산탐승시설조사위원회 간사, 7월 조선중앙정보위원회 간사, 11월 조선총독부 자원위원회 간사, 1938년 2월 시국대책준비위원회 간사, 4월 저축장려위원회 간사, 5월 제17회 조선미술심사위원회 간사 등에 위촉되었다. 1938년 조선청년단 단장, 같은 해 7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 10월 국민정신총동원위원회 조선연맹이 주최한 제1회 비상시 국민생활개선위원회 제1부(의식주 부) 전문위원으로 선임되었다.

학무국 사회교육과장으로 재직할 때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민족말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겼다. 대표적으로 1937년 7월 20일 ‘현하시국’이라는 제목으로 중일전쟁의 의미를 선전하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시국강좌를 담당했다. 8월에는 조선인 유력자가 중일전쟁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시국강연을 계획해서 실시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대표적인 민족말살정책인 ‘황국신민서사’를 제정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했다.

1939년 3월 전라남도 참여관 겸 내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전라남도 농촌진흥위원회 위원,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전라남도지부 감리관, 전라남도 방공위원회 위원, 광주보호관찰 심사회 예비위원, 1940년 1월 전라남도 임금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었다. 1939년 10월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전라남도 참여관 겸 내무부장으로 재임하면서 여론 환기와 국방사상 보급선전, 각종 시국 순회강연, 국체명징(國體明徵)과 내선일체를 구현하려는 각종 좌담회에 참여했고, 전라남도 학생들을 동원한 근로보국, 국채소화(國債消化)와 저축장려, 군용물자공출, 국방헌금과 병기헌납 등 전쟁을 독려하는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1940년 9월 경상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으로 전임되었다. 아울러 경상남도 미곡통제조합연합회 회장, 경상남도 농회 회장, 경상남도 황민연성도장장(皇民鍊成道場長), 경상남도 임금위원회 위원을 겸했다. 그해 11월 기원 2600년 축전기념장을 받았다. 1941년 2월 국민총력조선연맹 경상남도연맹 경제부장, 3월 경상남도 방공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43년 8월 전라북도지사로 승진했다. 9월 전라북도 농회 회장을 겸했고 10월에는 훈5등 서보장을 받았다. 신문이나 잡지에 수시로 국체명징과 진충보국(盡忠報國) 정신, 내선일체와 시국인식을 강조하는 글을 기고했다. 대표적으로 「영춘수상-국체명징여교학쇄신(國體明徵與敎學刷新)」(『경학원잡지』 1937년 2월호), 「국민정신 작흥주간 실시」(『매일신보』 1937.11.7.∼11.10.), 「시국과 사회교화」(『매일신보』 1938.1.5.), 「도의동양의 신건설-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진로」(『매일신보』 1938.9.27.), 「역사적 대국민운동-국민정신총동원연맹의 진로」(『매일신보』 1938.9.28.∼9.29.), 「지원병사 제군에게, 십만돌파의 소식을 듣고 전 조선청소년 제군을 격려하는 글」(『삼천리』 1940년 7월호) 등이 있다.

해방 후 1945년 10월까지 경상북도지사로 근무했다. 1949년 2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9월 반민특위 검찰부에 의해 공민권 3년 정지를 구형받았으나 특별재판부 결심공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었다. 1960년 7월 민주당 공천을 받아 참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김대우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7 · 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2: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85∼120)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2: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1(민족문제연구소, 2009)
『친일파 99인: 분야별 주요인물의 친일 이력서』(반민족문제연구소, 돌베개, 1993)
『동아일보(東亞日報)』(1921.3.27; 1925.3.24; 1956.3.2.)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www.koreanhistory.or.kr)
집필자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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