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5월 19일 함경남도 단천군 출생으로, 1937년 경성고등상업학교에 입학해 1940년 3월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동경상과대학(東京商科大學)에 입학해 1942년 졸업했다. 재학 중 1941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으며, 강원도 도속(道屬), 부산 체신국 저금보험과장 등을 역임했다.
해방 후 체신국 통신과장으로 근무하다가 1946년 4월 중앙체신국 우무국장(郵務局長)에 취임했다. 1958년 3월 서울시 내무국 국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960년 3월 내무부 차관에 임명되어 같은 해 8월까지 재임했다. 퇴임 후 1960년 11월부터 무역협회 상근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61년 7월 주일특명전권공사로 발령을 받아 한일회담 재개를 추진했으며, 11월 대사가 되었다. 1962년 2월 주 호주 대사로 부임했고, 같은 해 6월부터 주 뉴질랜드 대사를 겸직했다. 1968년 7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아스팍회의, 9월 박정희 대통령의 호주 및 뉴질랜드 방문, 10월 뉴질랜드 홀리오크(Keith Holyoake) 수상의 방한을 계기로 호주 및 뉴질랜드와의 축산협력 등 통상증대협의를 이끌었다. 1969년 11월 본부로 발령 받아 귀국했으며, 1970년 3월 의원면직했다.
1971년 2월부터 1975년까지 진해화학 사장으로 재임하며 1973년 내외경제신문 이사와 1975년 2월 무역 30년사 편찬위원회 소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진해화학 퇴임 후인 1975년 10월 아스팍 사무국장, 1976년 유진화학 고문을 맡았고, 1978년부터 1985년 2월까지 코리아 제록스 사장으로 재직했다.
1980년 한국·호주 친선협회 명예회장으로 위촉되었고, 1985년 3월 코리아 제록스 사장직을 퇴임한 후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이외에도 1986년 한국정보서비스 사장, 1989년 동아컴퓨터 고문, 1990년 동아무역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1990년 세종대 관선이사로 인선되었으며, 1991년 11월 11일 숙환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