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1월 1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안동면(安東面) 삼산동(三山洞) 출생으로, 호는 춘강(春江)이다. 1943년 경상북도 경주군 산내면(山內面)에 소재한 경주중학교에 재학 중 불온한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이정선(李貞善)·김한용(金漢龍)·권오봉(權五鳳) 등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문예모임 성격의 항일모임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했다.
1943년 4월부터 명성회에서 『새벽(黎明)』이라는 교양지 형식의 유인물을 발간했는데, 시·수필·감상문 뿐 아니라 국내·외 정세와 태평양 전쟁의 전황(戰況)과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패전이 멀지 않았다는 내용 등을 실었으며, 김원현과 함께 인근 지역의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배부하는 역할을 했다.
1944년 10월 명성회 회원들은 무력항쟁을 지향하는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과 합류해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45년 3월 10일 일본 육군기념일에 안동농림학교 무기고에 있는 총으로 안동경찰서, 안동헌병파견대를 기습 공격해 점령하고,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한 후 의성으로 진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그해 2월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정현모도 1945년 3월 경 체포되어 5개월 간 옥고를 치렀으며, 수감 중 해방을 맞아 8월 17일 대구 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시고유예로 풀려났다. 1982년 향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