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운(永雲)은 1840년에 의성 수정암 삼세불도에서 처음 이름을 남기기 시작하여 1879년까지 40여 년간 경상도·전라남도·경기도 지역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23점의 불화를 남겼다. 1849년에 천여(天如) 밑에서 선암사 대웅전 삼장보살도와 지장전 지장보살도를 제작했으며 1862년에 해인사 대적광전 124위신중도에서 수화승으로 참여했다. 1874년에 부산 안적사 아미타불도 제작 이후 경상도에 머물지만 1878년 10월에는 경기도 수원 봉령사 석가모니불도와 칠성도(1878)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다시 경상도로 내려와 1879년 울산 동축사 불화를 끝으로 더 이상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신중도를 많이 그렸으며 아미타불홍도 2점을 남겼다.
영운이 수화승으로 모셨던 화승들은 천여, 익찬, 성주, 성규, 취선, 천기 등이 있다. 영운의 대표작은 처음 수화승으로 1862년에 제작한 해인사 대적광전 124위신중도이다. 화면 가득히 기존 신중도에 등장한 모든 도상을 함께 모아 놓은 것은 19세기 후반 불화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중도는 다른 불화들에 비해서 늦게 출발하여 19세기에 가장 많이 그려진 불화로 신중도에 포함된 도상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영운의 해인사 대적광전 124위신중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