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영은 조선 후기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 쌍계사 국사암 「치성광여래도」 등을 그린 화승이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전라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866년의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와 대흥사 진불암 「지장시왕도」부터 1907년의 흥국사 보광전 「아미타불도」에 이르기까지 40여 점의 작품이 전한다.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1866~1907]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으로, 당호는 향호당(香湖堂)이다. 1866년의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와 대흥사 진불암 「지장시왕도」부터 1907년의 흥국사 보광전 「아미타불도」에 이르기까지 4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 중 수화승으로 참여한 작품은 약 13점이며, 주제별로는 불회도 11점, 보살도 11점, 신중도 5점, 칠성도 5점, 독성도 3점, 산신도 1점, 현왕도 1점 등이다.
묘영의 화승으로서의 가장 이른 활동은 수화승 기연(錡衍)의 대흥사 진불암 「지장시왕도」[1866년]와 수화승 천여(天如)의 화엄사 구층암 「아미타불도」[1866년]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화기에 ‘묘영(妙英)’ 또는 ‘묘영(妙永’)으로 마지막에 이름이 올라 있다.
1870년대에는 수화승 천여와 취선(就善)을 따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왕래하며 작업하였다. 천여를 따라 남해, 함양, 통영 등 현재의 경상남도 지역에서 작업하였으며, 후반에는 수화승 취선과 함께 전라남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879년에 처음으로 수화승을 맡아 쌍계사 국사암 「치성광여래도」와 순천 선암사 염불암 「신중도」,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금강암 「지장시왕도」를 제작하였다.
1880년대에는 수화승 기전(琪銓)과 함께 범어사, 해인사 등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882년의 범어사 「영산회상도」 · 「관음보살도」 · 「삼장보살도」 · 「신중도」와 1885년의 해인사 대적광전 「삼신불도」 등에 참여하였다. 자신만의 완숙한 화풍을 보여준 기전의 작업에 참여한 경험은 이후 묘영의 불화 제작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1890년 이후에는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 머물면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의 흥국사 보광전 「아미타불도」가 마지막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