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은팔찌를 제작한 장인.
내용
총 17자로 새겨진 명문은 ‘경자년이월다리작대부인분이백주주이(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州主耳)’이다. 이를 통해 왕비가 죽기 6년 전인 경자년(520)에 ‘다리’라는 장인이 만든 팔찌임을 알 수 있다. ‘다리’라는 이름은 문헌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름 끝이 이(利, 里)로 끝나는 예가 삼국에서 많이 나타난다. 512년(무령왕 12) 가야에서 백제로 넘어갔다는 상다리(上哆利) · 하다리(下哆利)라는 지명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같은 맥락으로 시기는 다소 뒤떨어지지만, 일본의 호류지[法隆寺]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의 작가 도리(止利)도 백제의 다리와 관계 있는 장인 집단의 후손으로 보기도 한다. 근래 명문을 새롭게 해석하여 대부인의 이름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백제 사마왕: 무령왕릉발굴, 그 후 30년의 발자취』(국립공주박물관, 2001)
- 『백제무령왕릉』(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91)
- 『무령왕릉』(문화재관리국, 1973)
논문
- 기호철, 배재훈, 「무령왕비 은팔찌 명문의 재검토」(『한국고대사탐구』 17,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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