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찬은 조선 후기 송광사 화엄전 「신중도」, 화엄사 명부전 「시왕도」, 선운사 대웅전 「삼신불화」 등을 그린 화승이다. 18세기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의겸에 의해 확립된 전통적인 불화 양식을 계승하면서, 천여, 내원과 함께 19세기 전라도 불화 화단을 이끌었다.
당호는 해운당(海雲堂)이다. 1824년의 송광사 화엄전 「신중도」부터 1862년의 화엄사 명부전 「시왕도」까지 40여 년에 걸쳐 약 24점의 작품을 남겼다. 전라도 화승 금암당(錦巖堂) 천여(天如)와 원담당(圓潭堂) 내원(乃圓) 밑에서 학습하였고, 수화승으로는 송광사 화엄전 「신중도」[1824]를 비롯해 송광사 자정암 「석가모니후불홍탱」[1835], 대흥사 「범천도」 · 「제석천도」[1847] 등을 작업하였다. 오세창(吳世昌)이 지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의 석풍계(釋楓溪) 항에 풍계의 제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사열전(東師列傳)』 원담선사전(圓潭禪師傳)에는 원담의 벗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익찬은 명부계 불화에 능한 화사였다. 현전하는 그의 작품 중 지장보살도와 시왕도, 현왕도, 삼장보살도 같은 명부계 불화가 총 8점으로, 전체의 1/3가량을 차지한다. 그 외 신중도, 삼불회도, 칠성도 등도 제작하였다. 특히 선운사 대웅전의 「삼신불화」[1840]나 화엄사 각황전의 「삼세불화」[1857]는 3~6m에 달하는 대작으로, 화원으로서의 그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현전하는 작품으로 미루어 볼 때, 18세기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 화승인 의겸(義謙)에 의해 확립된 전통적인 불화 양식을 계승하면서, 천여, 내원과 함께 19세기 전라도 불화 화단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익찬의 화맥은 이후 도순(道詢), 덕린(德璘), 준언(俊彦), 산수(山水) 등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