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琪銓)은 19세기 후반에 해인사에 거주하며 수화승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기전은 1881년에 제작된 심우사 신중도에서 화주(化主)로 기록되어 있는데, 심우사 신중도는 합천 해인사 관음전에서 조성한 것이다. 또한 1885년에 제작된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화의 화기에는 총지(摠持)로 활동하면서 산중질(山中秩)에 경담 영선(鐘潭 映宣)과 함께 거주한 기록이 있다.
많은 불화를 관허 의관(貫虛 宜官)과 함께 제작하였고 김룡사의 수화승 하은 응상(霞隱 應祥)의 화풍을 수용하였다. 1880년에 김룡사의 불화 제작에 참여하면서 응상을 만났고 이때 독성도를 단독 조성한 것을 비롯하여 사천왕도와 금선대 아미타불도, 양진암 신중도, 금선대 신중도에 참여하였다. 이후 1881년에 해인사에서 조성한 관음전 아미타회상도와 궁현당 아미타회상도에 응상의 김룡사 금선대 아미타불도의 도상 특징을 도입하여 제작했다. 광선문 광배, 연꽃줄기형 대좌, 협시보살의 유희좌 및 연꽃 지물, 사천왕의 낮은 신체 비례 등 그의 화풍은 이전과 다른 변화를 보인다.
이후 기전은 응상 불화에서 사용된 강한 청색과 구도를 자신의 불화에 수용하였다. 그러나 응상의 불화가 섬세한 구성과 필선을 보이는데 반하여 기전의 불화에서는 본존의 다부진 신체와 강한 필선 사용 등에서 힘찬 형태와 구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권속의 자세는 음영법이 짙은 청색과 어우러져 화면에 강렬한 분위기를 도출한다.
기전의 활동은 1887년에 불화 제작을 끝으로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1892년에 해인사 괘불 제작이라는 가장 큰 불사가 있음에도 기전은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그와 함께 범어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1882년)를 제작했던 서암 전기(瑞庵 琠基)가 1892년에 제작된 해인사 괘불의 수화승으로 등장하였고, 우송 상수(友松 爽洙) 역시 1890년 이후 제작된 해인사 불화의 수화승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기와 상수는 기전의 화맥을 이어받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해인사 일대의 불화를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