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정 초상 ( )

유순정 초상
유순정 초상
회화
유물
문화재
조선 전기의 문신 류순정(柳順汀, 1459~1512)의 공신 초상화.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류순정(柳順汀, 1459~1512)의 공신 초상화.
개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2㎝, 가로 110㎝.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유순정의 본관은 진주, 자 지옹(智翁)이며, 김종직의 문인이다. 1487년(성종 18) 진사를 거쳐 알성문과에 장원, 전적(典籍)에 등용되었다. 1491년 북정도원수(北征都元帥) 허종(許琮)의 막하로 야인 정벌에 종군하여 전공을 세웠다. 연산군 때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고,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 공을 세우고 정국공신 1등에,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려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어 청천부원군(菁川府院君)에 봉해졌다. 1509년 좌의정에 오르고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직접 경상도 도원수로 출정하여 난을 평정했다. 1512년 영의정에 이르러 재직 중 사망하여 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定)으로 내렸으나, 후에 성렬(成烈), 다시 문성(文成)으로 개시(改諡)되었다.

내용

「유순정 초상」은 1506년 중종반정을 거사한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록되었을 때 제작된 것을 1646년경에 이모한 것이다. 화면 오른쪽에는 유순정의 7대손 유식(柳寔)이 “병충분의 결책익운 정국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청천부원군 증시 성렬공 유순정 화상 7대손 부호군 유식 삼가 씀.(秉忠奮義 決策翊運 靖國功臣 大匡輔國 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兼 領經筵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事 菁川府院君 贈諡 成烈公 柳順汀 畵像 七代孫副護軍 寔謹書)”이라고 쓴 화제가 있다.

화면 왼쪽에는 김상헌(金尙憲)의 성렬공화상찬(成烈公畵像讚)이 있는데, “현연하게 드러나신 성렬공이여. 세운 공훈 드높고 드높도다. 초상이 어찌 그리 닮았는가. 명석하신 모습에 밝은 눈동자라네. 단아하고 의젓하며 신중하거니 아직까지 빼어난 풍모 드러내누나. 지난 일 생각하니 누가 공과 견주어 나으리오. 아마도 이윤[伊尹: 탕 임금 때 명재상]의 뜻을 사모하고 곽광[霍光: 한나라 때 명신]의 충심을 품은 자일지니[有顯成烈, 厥勳攸崇, 傳神惟肖, 晳貌明瞳, 端莊詳愼, 尙見英風, 逖溯遐觀, 孰爲比隆. 其殆慕伊尹之志, 而懷霍光之忠者歟].”라는 찬문 아래 “안동 김상헌이 짓고, 9대손 선이 삼가 쓰다(安東金尙憲 撰, 九代孫 縇 謹書)”라고 적혀 있어 9대손인 유선(柳縇, 1678~1726년 이후)이 후에 추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상헌 『청음집』의 화상찬 후서에 의하면, 1646년 유순정의 현손이자 자신의 문하에서 수학한 유시정(柳時定, 1596~1658)이 충훈부 낭청이 되어 유순정의 유상(遺像)이 심하게 마멸될 것을 염려하여 양공(良工)을 시켜 새로 화상을 그리고 또한 소상(小像)으로 본떠 집에 봉안한 것을 계기로 화상찬을 지은 것이었다. 따라서 17세기 활동한 유식의 화제가 있는 「유순정 초상」은 유시정이 1646년에 이모한 화상과 시기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순정 초상」은 남색단령을 입고 교의에 앉은 전신 교의좌상이다.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얼굴은 짙은 갈색 선으로 얼굴 윤곽을 그리고 있고 얼굴 전면에 천연두를 앓은 흔적까지 묘사하였다. 손은 공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사모에 짙은 남색의 단령을 입고 있다. 흉배는 공작 두 마리가 직금(織金)되었고, 서각대(犀角帶)를 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품의 품계에 해당한다.

공수자세나 교의에 방석 끝을 붙들어 맨 형태, 왼쪽 단령의 옆트임 사이로 직령과 패도의 장식적 요소를 드러나게 한 것은 16세기 초 공신상의 특징을 반영하였다. 특히 바닥에 있는 짙은 채색의 채전(彩氈)은 공신화상에서 처음 나타나는 요소로 주목된다.

현황

유순정 초상으로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의 「유순정 초상」 외에 경기도박물관 위탁본 「유순정 공신상」이 있다. 경기도박물관의 「유순정 공신상」은 서울역사박물관의 「유순정 초상」과 달리, 상단에 전서로 ‘정국공신 영의정 성렬 유공유상(靖國功臣領議政成烈柳公遺像)’라는 화제를 적었다. 작품에서는 전서체 화제를 제외하고 ‘문성’이라는 개시(改諡)를 반영하여 이모한 것이 특징이다. 우측에 화제는 ‘중종조 정국원훈 영의정 청천부원군 개시문성 유공 휘순정 자지옹 유상(中宗朝 靖國元勳 領議政 菁川府院君 改諡文成 柳公 諱順汀 字智翁 遺像)’이라 적었다. 그리고 화제 바로 아래 좌측에 ‘문성(文成)’의 시호를 반영한 김상헌의 화상찬이 5행으로 적혀 있고, ‘숭정기원 재갑신 후 경자년 9대손 수가 삼가 적다(崇禎紀元 再甲申後 歲庚子 九代孫 綏 敬書)’라고 하여 1720년 9대손 유수(柳綏)가 우측 화제와 김상헌의 화상찬을 적었다. 따라서 경기도박물관 위탁본 「유순정 공신상」의 제작 시기는 172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징

이 초상에서와 같이 공신화상 위에 화상찬을 쓴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공신화상에 진채의 채전(彩氈)이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이다. 또한 화면 왼쪽으로 치우친 족좌대는 17세기 전반까지 제작된 좌안칠분면 공신화상에서 나타나지만 족좌대 위에 깔린 문양이 있는 화문석은 이례적이다. 유순정과 같은 해인 1506년에 정국공신으로 책록된 「홍경주 정국공신화상」의 18세기 이모본에서도 족좌대 위에 화문석이 나타난다. 그러나 두 초상 모두 16세기 초 정국공신 화상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요소인지 아니면 후대 이모 과정에서 추가된 것인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의의와 평가

중종반정의 공으로 책록된 정국공신 화상 중 현전 작품이 매우 희귀하여 유홍(柳泓), 이우(李堣), 홍경주(洪景舟)의 공신화상과 함께 16세기 초 공신화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청음집(淸陰集)』권15
『초상화 연구: 초상화와 초상화론』(조선미, 문예, 2007)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정은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