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의 문관 정언욱(鄭彦郁, 1713~1787)을 그린 초상화와 초본(草本).
내용
정장관복본의 「정언욱 영정」은 머리에는 오사모(烏紗帽: 검은색 모자의 일종)를 쓰고 얼굴은 좌측면이 3/4 가량 보인다. 단령(團領: 관리들이 입던 관복)을 입고, 공수(拱手: 두 손을 맞잡음)하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얼굴과 모자는 반측면을 향하지만, 몸체와 의자 등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두 손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맞잡지 않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의자에는 표피(豹皮)가 깔려있고, 바닥은 묘사되지 않았다.
유지초본은 화면을 세로로 삼등분하여 접어서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는 탕건을 쓴 얼굴의 유지초본, 좌우의 별지에는 초본의 주인공과 화가에 대한 간단한 내용이 적혀있다. 오른쪽에는 “숙종대왕삼십구년계사윤오월초이일인시생 영종대왕오십일년을미작 화수평양이유덕(肅宗大王三十九年癸巳閏五月初二日寅時生 英宗大王五十一年乙未作 畵手平壤李有德)”이라고 쓰여 있고, 왼쪽에는 “영종대왕오십일년 청건륭사십년재오주시시년육십삼초본 정유소서일서년육십오(英宗大王五十一年 淸乾隆四十年在吳州時時年六十三草本 丁酉小署日書年六十五)”라고 쓰여 있다. 즉 이 초본은 1775년(영조 51)인 정언욱 63세 때 평양의 화가 이유덕이 그렸고, 정언욱이 1777년 65세 때 이 글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지초본은 그림의 화법(畵法)과 화기(畵記)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정언욱이 살았을 당시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장관복본은 흉배와 서대(犀帶: 허리띠의 일종)가 당시의 복식제도에 맞지 않고 각대와 흉배, 호패의 술로 추정되는 장식 등이 당시의 양식과는 맞지 않아 조선 말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초상화,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문화재청 편, 눌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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