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허한 초상」은 세로 147㎝, 가로 63㎝, 「허적 초상」 세로 162㎝, 가로 97㎝. 「허적 초상」은 머리에는 오사모(烏紗帽: 검은색 모자의 일종)를 쓰고, 얼굴은 좌측면이 3/4가량 보인다. 단령(團領: 관리들이 입던 관복)을 입고 공수(拱手: 두 손을 맞잡음)하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의자에는 표피(豹皮)가 깔려있고, 바닥은 붉은색 채전에 마름모꼴이 연속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 허적진(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世子師 許積眞)”, “효묘계사평안도관찰사시사십사세본(孝廟癸巳平安道觀察使時四十四歲本)”, “당저이십년병진칠월중모(當宁二十年丙辰七月中摹)”라고 쓰여 있다. 이 화기(畵記)로 보아 허적이 1654년(효종 4) 평안도 관찰사 시절인 44세 때 이 초상화가 그려졌고, 1796년(정조 20)에 다시 모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초상화는 모사되었을 당시인 18세기의 양식으로 그려졌다. 사모는 비교적 높고, 관복은 음영법이 적극적으로 적용되었고, 신체 표현은 이전 시기보다는 자연스러우며 의자와 발받침에는 표피(豹皮)가 깔려 있다. 하지만 바닥 부분은 원본의 영향을 보여주듯 17세기 공신초상화에서 주로 보이는 붉은색 채전이 묘사되었고 바닥과 벽을 구분하기 위해서 다섯 가지 색으로 띠를 둘렀다.
「허한 초상」은 머리에는 오사모(烏紗帽: 검은색 모자의 일종)를 쓰고, 얼굴은 좌측면이 3/4가량 보인다. 단령을 입고 공수하고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얼굴과 사모는 반측면이지만 몸체와 의자는 정면을 향하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행통정대부이천도호부사(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行通政大夫利川都護府使)”, 왼쪽에는 “광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행오공허한(廣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杏㮧公許僴)”이라고 쓰여 있는데, 허한의 관직 시기 이외에 초상화의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없다.
허한은 허적의 아버지이지만 「허한 초상」은 관복의 색깔과 문양, 흉배, 의자 표현과 양식 등을 보아 근대 이후에 그려진 초상화로 보인다. 특히 관복의 안료가 박락(剝落)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 초상화의 큰 특징인 배채(背彩)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