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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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단체
1985년 9월 결성된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의 연합기구.
이칭
이칭
민통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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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85년 9월 결성된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의 연합기구.
내용

1983년 12월 이른바 ‘학원자율화 조치’를 계기로 정부는 일련의 유화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분산되었던 재야의 여러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이러한 유화국면을 이용하여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협의체 건설을 추진하였다.

먼저 1984년 6월 ‘민중민주운동협의회(약칭 민민협)’가 만들어졌고, 10월에는 ‘민주통일국민회의(약칭 국민회의)’가 만들어졌다. 대중운동단체의 연합이었던 전자와, 명망가들의 조직이었던 후자는 상호 보완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에 곧 통합논의가 진행되었다.

1985년 2·12총선 이후 강력한 야당으로 신한민주당(약칭 신민당)이 부상하자, 이에 상응하여 강력한 재야 통합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결국 1985년 3월 29일 두 단체가 통합하여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약칭 민통련)’이 결성되었다.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엽합(약칭 민청련)’과 ‘서울노동운동연합(약칭 서노련)’, 그리고 여러 개신교 운동단체 등이 추가로 가입하면서, 민통련은 해방 후 가장 폭넓은 계층, 부문, 지역 간의 운동 연합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민통련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부응하여 범민주세력의 전열을 정비하고, 군사독재 종식을 위한 민주, 민권, 민족통일운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민통련의 과제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이며, 그 주체는 민중이어야 한다”는 민중노선을 분명히 하였다. 민통련은 상임위원회로 부문운동단체를 포괄했고, 각 지역조직을 통해 개인회원을 받아들였다. 기관지 『민주통일』과 신문 『민중의 소리』를 통해 국민들에게 민주화운동을 알리고자 했으며, 노동자, 농민, 철거민 등의 생존권 투쟁을 적극 지원하였다.

민통련은 신민당의 직선제 개헌운동과 연대하며 민주헌법 쟁취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신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지부 결성대회와 결합하여, 신민당의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후 민통련 지역조직의 주도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1986년 5월 3일 인천의 개헌추진위원회 결성대회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자, 정부는 민통련을 이 사태의 배후로 몰아 문익환(文益煥) 의장과 장기표(張琪杓) 정책실장 등 주요 간부 전원을 구속·수배하면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또한 1986년 11월에는 민통련이 있던 건물을 봉쇄하고 민통련 본부와 서울, 강원, 경북, 경남 지부 등에 해산명령을 내렸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자 민통련은 야당, 종교계 등과 연대하여 ‘고문 및 용공조작 저지 공동대책위원회(약칭 고문공대위)’를 조직하면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고문공대위를 중심으로 한 재야와 야당 그리고 학생들의 공동투쟁은 5월 27일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국본은 곧이어 벌어지는 6월 항쟁에서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재야세력들은 야당의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분열과 궤를 같이하여 분열하였다. 민통련은 1987년 10월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결정하였지만, 후보단일화파와 독자후보파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민통련을 탈퇴하였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이 패배하면서 민통련은 사실상 와해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민통련은 1989년 1월 21일 민통련 계승을 표방하며 출범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전민련)’에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넘겨주고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6월 항쟁』(서중석, 돌베개, 2011)
『한국민주화운동사』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돌베개, 2010)
『6월 항쟁을 기록하다』2(성유보 외,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7)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우리 강물이 되어』Ⅱ(유시춘 외, 경향신문사, 2005)
집필자
오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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