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성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방치석(方致錫), 방성규(方聖圭)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4년 10월 2일
사망 연도
1919년 4월 2일
출생지
충청남도 천안
대표 상훈
대통령표창|건국훈장 애국장
내용 요약

방치성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의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시장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데 참여하다가 일본 군경의 총격을 받아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충청남도 천안군 성남면(城南面) 출신이다. 1874년 10월 2일 태어나서 1919년 4월 2일 사망하였다. 방치석(方致錫) · 방성규(方聖圭)라고도 한다.

주요 활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일제히 일어났다. 3월 13일 이화학당 학생으로 서울의 3 · 1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유관순(柳寬順)과 유예도(柳禮道)는 목천군 이동면 주1로 귀향하였다.

그들은 천안군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으며, 그 생각을 전해 들은 유중권(柳重權), 유중무(柳重武), 김용이(金用伊), 조인원(趙仁元), 조병호(趙炳鎬), 홍일선(洪鎰善), 김교선(金敎善), 한동규(韓東奎), 이백하(李柏夏), 이순구(李旬求) 등은 병천리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4월 1일 오후 1시경에 천안군 주2 병천리 아우내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만세시위 주동자들은 시장에 모인 군중 500~6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이끌었다. 방치성은 시위대의 일원으로 시장 일대를 행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시위대는 3,000여 명에 이르렀다.

아우내시장에 인접한 병천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은 시위대가 해산을 거부하자,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고 총검으로 무력을 행사하였다. 일본 군경의 발포와 무력 진압으로 시위대는 일시적으로 해산하였다. 시위대는 시위로 사망한 인사들의 시신을 운구하여 헌병주재소로 가서 주재소장과 헌병들에게 무력 진압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일본 군경의 해산 요구를 거부하였다.

오후 4시경 천안에서 헌병 하사와 천안철도 엄호대장 및 군인들이 아우내시장으로 출동하였다. 시위대는 출동한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에도 불구하고 해산하지 않고 주재소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그 밖에 시위대는 천안과 병천을 연결하는 전화선을 절단하고 전신주 1개를 쓰러뜨렸으며, 면사무소 입구 미닫이를 파괴하였다.

방치성은 일본 군경의 발포와 무력 진압 과정에서 총격을 당하였으며 다음날인 4월 2일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국가보훈처, 197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국가보훈처, 1971)

판결문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 6. 30.)

인터넷 자료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국가기록원 독립운동관련 판결문(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Main.do)
주석
주1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주2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집필자
한승훈(고려대학교 독일어권문화연구소)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