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인원(寅元). 호는 야운(冶雲). 충청남도 예산 출신. 조종호(趙鍾灝)의 아들이다.
1907년부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여 덕산지소장(德山支所長)으로 활약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19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 파견원인 이영식(李英植)과 연결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충청도지단(忠淸道支團)을 조직하고 서무부장으로서 각종 독립운동관계 문건의 배포에 주력하였다.
1920년 12월 20일(음) ‘한국인은 납세하지 말라’는 내용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정서 명의로 된 선전문을 삽교면 역촌리 게시판에 부착하다가 붙잡혀, 다음해 9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1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