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는 미감리회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홀기념병원(The Hall Memorial Hospital)과 미북장로회에서 운영하던 평양제중병원(Pyengyang Caroline A. Ladd Hospital), 미감리회 여선교회에서 운영하던 평양부인병원(Pyengyang Women’s Hospital of Extended Grace)이 있었다.
홀기념병원은 평양에서 활동을 하다가 과로와 전염병으로 1894년 11월에 사망한 미감리회 의료선교사 홀(W. J. Hall)을 기념하여 1897년 2월에 세운 병원으로 포웰(Douglas Fowell)이 초대 원장을 맡았다.
평양제중병원은 1895년 10월 미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웰즈(J. H. Wells)가 평양에 정착하면서 운영한 시약소에서 발전한 병원으로, 1906년 10월 병원 건물을 신축하고, 1915년 웰즈가 선교사를 사임하고 귀국하기까지 원장을 맡았다.
평양부인병원은 홀(W. J. Hall)의 부인인 로제타 홀(R. S. Hall)이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와 함께 홀기념병원 안에 광혜여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하였다가 1903년 독립 건물을 지어 분립한 병원이다. 1910년 4월 박에스더가 사망하자 1912년 여의사 커틀러(M. Cutler)가 부임하였다.
1915년 웰즈의 사임 귀국을 계기로 북장로회 선교부에서 미감리회 선교부에 평양 병원 연합을 제안하여 연합하기로 합의하였고, 북장로회측에서 의사 비거(J. D. Bigger)와 간호원 라이너(E. M. Reiner), 미감리회 측에서 홀기념병원 원장 앤더슨(A. G. Anderson)과 간호원 앤더슨(N. Anderson)이 합동의 실무를 수행하여 1920년 병원명칭을 홀기념연합병원(Hall Memorial )으로 하였다. 1923년 1월 커틀러가 원장이던 평양부인병원도 여기에 연합하여 평양연합기독병원(Pyengyang Union Christian Hospital)으로 개칭하고 초대 원장으로는 앤더슨(A. G. Anderson)이 취임하였다. 이 병원에서 활동한 한국인 의사로는 김애희(金愛嬉, 여의사), 유기원(劉基元), 장기려(張起呂) 등이 있었고, 1936년 당시 병원 상황은 의사 19명, 간호원 25명, 직원 120명, 진료환자 수는 82,473명이었다.
1940년 11월 미감리회 선교사들의 철수로 원장 앤더슨이 귀국하고, 1941년 1월 31일 병원 이사회에서 세브란스병원의 김명선(金鳴善)을 원장으로 선임했다. 김명선은 1945년 해방 때까지 세브란스의전에서 강의를 하면서 원장을 겸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