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하였다. 가죽신을 만들어 파는 갖바치로 기독교를 믿기 전에는 원산을 중심으로 방랑생활을 하였다. 1892년 7월 원산에서 선교사 게일(J. S. Gale)의 권유로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그에게 고용되어 집안일을 돕고 함께 전도활동을 하였다. 1899년 9월 게일을 따라 서울에 올라와 1900년 게일이 담당한 연동교회의 조사로 활동했다. 1904년 연동교회에 당회가 조직될 때 초대 장로로 장립되었고, 같은 해 9월 제4회 장로회공희회의 추천을 받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05년 제5회 장로회공의회에서 평양의 길선주(吉善宙), 부산의 심취명(沈就明) 등과 함께 전도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07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독노회)를 조직할 때 연동교회 장로로서 참여하였다. 1903년에 창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도 참여하여 1908년 전덕기(全徳基)·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의사부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04년 8월 게일의 집에서 창립된 국민교육회의 회원이었다.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1908년 4월 24일 사망하였다. 게일이 지은 소설 『선구자(The Vangard)』에 나오는 고씨는 고찬익을 모델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