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1월 11일 충청북도 청원군 출생으로,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7년 2월 교토[京都]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법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해방 후 경찰이 되어 미 군정청 경무부(警務部) 관방(官房)에서 서무과장, 감찰관, 총경(總警)을 역임하다가 1947년 8월 제1관구 경찰부청장으로 승진했다. 1948년 5월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북도 청원 을구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6월 국회 상임위원회 내무치안위원회에 소속되었다. 같은 달 무소속의원이 중심이 된 국책연구회에 참여했다.
1949년 6월 주한미국 군사고문단 설치를 환영하는 성명서에 날인했으며, 같은 해 7월 국회 치안 및 민정시찰단으로 경상남북도를 시찰했다. 9월 민주국민당에 가입했고, 1950년 4월 조병옥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북한에서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1959년 5월 함경북도 회령농장으로 이주했고, 그해 9월 2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