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근

  • 정치·법제
  • 인물
  • 현대
경찰부청장,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중앙위원을 역임한 경찰·정치인.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인민해방군사건
  • 사망 연도1959년 9월 2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3년 1월 11일
  • 출생지충청북도 청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5년
  • 이은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찰부청장,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중앙위원을 역임한 경찰·정치인.

내용

1913년 1월 11일 충청북도 청원군 출생으로,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7년 2월 교토[京都]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법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해방 후 경찰이 되어 미 군정청 경무부(警務部) 관방(官房)에서 서무과장, 감찰관, 총경(總警)을 역임하다가 1947년 8월 제1관구 경찰부청장으로 승진했다. 1948년 5월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북도 청원 을구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6월 국회 상임위원회 내무치안위원회에 소속되었다. 같은 달 무소속의원이 중심이 된 국책연구회에 참여했다.

1949년 6월 주한미국 군사고문단 설치를 환영하는 성명서에 날인했으며, 같은 해 7월 국회 치안 및 민정시찰단으로 경상남북도를 시찰했다. 9월 민주국민당에 가입했고, 1950년 4월 조병옥을 후임 국무총리로 추천하는 연서에 서명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북한에서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1959년 5월 함경북도 회령농장으로 이주했고, 그해 9월 2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 의정총감』(국회의원총감발간위원회, 1994)

  • - 「평양룡성구역 재북인사들의 묘를 가다」(『민족 21』, 2004.5.1.)

  • - 「민국당 의원 73 대청, 동성회 일부 포섭」(『동아일보』, 1949.8.2.)

  • - 「순 무속 소장 국의원 국책연구회를 조직」(『경향신문』, 1948.6.20.)

  • - 「경무부 이동」(『경향신문』, 1947.8.9.)

  • - 대한민국헌정회(www.rokps.or.kr)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