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창의록 ()

조선시대사
문헌
1728년 이진동이 무신란(戊申亂) 때 경상도에서 일어난 의병에 대한 사적을 모아 기록한 의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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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28년 이진동이 무신란(戊申亂) 때 경상도에서 일어난 의병에 대한 사적을 모아 기록한 의병록.
개설

『무신창의록(戊申倡義錄)』은 1788년(정조 12) 이진동(李鎭東)이 주도하여 1728년(영조 4) 무신란 때 안동과 상주 등 영남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의 명단과 활동 상황을 기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당대에 바로 간행되지 못하다가 1874년(고종 11) 유후조(柳厚祚)의 서문을 수록하여 간행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1788년(정조 12) 4월 우의정 채제공(蔡濟恭)의 건의에 따라 무신란 때 의병을 일으킨 유승현(柳升鉉)을 이조참판에, 권만(權萬)을 이조참의에 추증하는 한편 경상 감사에게 도내의 사적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에 앞선 3월 정조는 무신란 진압 60주년을 기념하여 최규서(崔奎瑞), 오명항(吳命恒) 등에게 치제하도록 한 바 있는데, 유승현 등의 추증 역시 이것의 연장선상이었다. 정조의 이런 조치는 채제공을 우의정에 제수하면서 동시에 영남 남인들을 정치적으로 포섭하려는 의도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그러나 경상 감사가 이에 대한 충분한 대응을 하지 않자, 이진동이 주도하여 도내 유생들의 도움을 받아 13개 고을의 사적을 모아 1책으로 편집하여 같은 해 12월 국왕에게 제출하였다. 이때 이진동 등은 영남 남인들의 숙원인 조덕린(趙德隣) 등에 대한 죄명의 탕척(蕩滌)을 함께 요구하였다. 이진동이 제출한 책자는 일부 내용만 간추려 인쇄해서 도내에 배포하도록 하였으나, 당대에는 바로 간행되지 않다가, 1874년(고종 11) 경에유후조의 서문을 받아 간행되었다.

내용

목판본이며, 5권 2책이다. 권1~권3까지는 지역별로 그 현황을 서술하였다. 권1은 안동과 상주, 예안을, 권2는 예천, 영천(榮川), 순흥, 풍기를, 권3은 영천(永川), 의성, 영양, 봉화, 진보(眞寶), 용궁 등을 대상으로 하였다.

내용 구성은 대체로 유사하다. 안동의 경우로 본다면 먼저 「안동의병 군문좌목(安東義兵軍門坐目)」이라 하여 의진(義陣)의 참여자를 직임별로 구분하여 열거하였다. 안동의 의진은 대장 유승현을 위시하여 부장, 좌방장, 우방장, 참모, 도서기(都書記), 서기, 정제유사(整齊有司), 사병도총(司兵都摠), 사병유사(司兵有司), 관량도총(管糧都摠), 관량유사, 출령도감(出令都監), 군관, 별군관, 집조기패관(執操旗牌官), 모병도감(募兵都監), 모량도감(募糧都監), 교임(校任) 등으로 구성되었다. 지역 내 서원이나 향교에서 창의하여 별도로 의진을 구성한 경우에는 따로 서술하였는데, 「삼계서원 창의좌목(三溪書院倡義坐目)」과 「도연서원 창의좌목(道淵書院倡義坐目)」이 그 예이다.

좌목 이후에는 일자별로 관군과 의병의 활동을 기록한 「군문일기(軍門日記)」, 의진의 운영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군문절목(軍門節目)」을 수록하였다. 「군문절목」은 의병의 대상자, 군기의 조달, 군량 수송을 위한 말의 조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어 통문과 격문, 그리고 호소사(號召使)나 안무사(按撫使) 또는 다른 의진과 교류한 서찰, 또는 보고문인 보장(報狀)과 전령(傳令) 등을 수록하였다.

권4의 「별록(別錄)」과 「속별록(續別錄)」은 권3까지의 내용에서 누락된 인물을 수록하였고, 「추록(追錄)」에서는 앞의 본문을 작성한 뒤에 의병 행적이 드러난 인물 중 근거가 명확한 경우를 대상으로 수록하였다.

「별록」에는 안동의 장령 김간(金侃), 사인(士人) 이재(李栽), 상주의 이만부(李萬敷), 권상일(權相一) 등을 수록하였다. 「속별록」에는 안동의 참봉 이협(李浹), 산산의 사인 김사진(金泗震)을 수록하였다. 「추록」에는 신녕(新寧), 청송, 문경, 함창 등과 향교 단위인 의흥향교와 군위향교의 의진을 수록하였고, 또한 경주의 의병장 생원 손경걸(孫景杰), 하양의 의병장 유학(幼學) 허호(許壕)와 「의흥홍씨 창의도총(義興洪氏倡義都摠)」이라 하고 유학 홍위세(洪緯世)를 수록하였다.

권5는 「전지(傳旨)」, 「장계(狀啓)」, 「연설(筵說)」, 「전교(傳敎)」,「소록(疏錄)」 등을 수록하였다. 「전지」에는 무신란 당시 국왕이 호소사에게 내린 전지를 수록하였고, 「장계」에는 안무사와 호소사가 국왕에게 올린 장계를 수록하였다. 이어 「연설」에서는 영남 의병의 포장(襃獎)과 관련된 국왕과 신료들의 논의 내용 또는 의병에 참여한 유승현과 권만(權萬)이 입시했을 때 국왕과의 대화 내용을 수록하였다. 「전교」에는 1788년(정조 12) 안동의 의병장 유승현의 자손을 녹용(錄用) 하라는 전교를 수록하였다. 「소록」에는 1788년 이진동 등이 본서를 국왕에게 올리면서 제출한 상소와 연명자를 나열하였으며, 이와 관련한 이진동 등의 상언과 이에 대한 예조의 회계, 대신의 헌의, 국왕의 전교 등을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무신창의록』은 정조대 중반에 채제공을 우의정으로 임명하는 한편, 영남 남인들을 정치 기반으로 확보하려는 정조의 정치적 의도가 취해지면서 편찬된 책이다. 이진동은 본서에서 국가 위기 상황에서 영남 지역 사림들의 의병 활동을 사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영남 지역이 그동안 무신란과 관련해서 의혹을 받는 상황을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본서 서문에서 유후조가 무신란을 “호서지란(湖西之亂)”으로 규정하여 영남 지역과는 무관함을 지적한 것은 이 같은 의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고문헌

『무신창의록(戊申倡義錄)』
「정조대 탕평정국의 군신의리 연구」(최성환,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2009)
「정조조의 영남만인소」(이수건, 『교남사학』1, 영남대학교 국사학회, 1985)
국립중앙도서관(www.n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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