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울산에서 발생한 민란에 대한 일종의 조사보고서이다. 당시 안동 부사로서 안핵사(按覈使)로 활동한 홍철주가 기록한 것으로, 민란의 전개 과정이나 이에 대한 대책 등이 자세하게 수록되었다.
홍철주(洪澈周, 1834~?)의 자는 백영(伯泳), 호는 송사(松史),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시 문과에 급제, 이후 암행어사와 이조 참의, 안동 부사를 비롯해 호조 판서,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 책은 그가 안동 부사에 재직하던 1875년(고종 12) 4월 울산에서 민란이 발생하자, 안핵사로 차출되어 난의 조사와 처리 과정 및 대책 등을 기록한 것이다.
필사본으로, 홍철주의 문집인 『송사유고(松史遺稿)』권4에 수록되었다.
시기는 1875년(고종 12) 4월 29일부터 같은 해 8월 7일까지를 수록하였다. 이문(移文), 도부(到付), 관문(關文), 전령(傳令), 절목(節目) 등 5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이문에는 5월 2일부터 7월 14일까지, 도부에는 5월 6일부터 8월 7일까지, 관문에는 4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전령에는 5월 5일부터 6월 25일까지 활동 기간에 오고간 공문이나 전령 등을 수록하였다.
절목에는 「민폐구폐절목(民弊捄弊節目)」, 「이폐구폐절목(吏弊捄弊節目)」, 「면임구폐절목(面任捄弊節目)」, 「시탄구폐절목(柴炭捄弊節目)」, 「영저리구폐절목(營邸吏捄弊節目)」등이 수록되었는데, 당시 울산 지역의 문제점을 제시한 뒤에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민폐구폐절목」에서는 결역(結役)의 명목이 번다함을 지적한 뒤 명목마다 결가(結價)를 정하였고, 「이폐구폐절목」에서는 아전을 감원하고, 아울러 필채(筆債)도 6천 560냥에서 1천 710냥으로 대폭 축소하였다. 「면임구폐절목」에서는 면임의 선임 절차를 공개적으로 하고, 매년 교체하며 추천자의 연좌로 책임있는 추천을 하게 하였고, 「시탄구폐절목」에서는 시탄가를 부가하는 호수(戶數)와 부가 액수 등을 정하였으며, 「영저리구폐절목」에서는 보폐전(補弊錢)의 마련 방안을 제시하였다.
1875년(고종 12) 울산에서 발생한 민란의 발생 배경이나 동향, 그리고 그 대책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