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반란 세력을 모집하여 무신란을 일으킨 주모자.
개설
생애
활동사항
조덕규는 4촌 형제인 조동규(趙東奎), 조명규(趙命奎) 등과 재종질인 조상(趙鏛)을 비롯해 신윤조(辛胤祖) 등을 반란군에 참여하도록 끌어들였다. 신윤조에게는 횃불을 밝히기 위해 송명거(松明炬, 관솔횃대) 2백 자루를 만들어 주면 후에 큰 공신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거나, 군사를 동원하고 술을 마련해 반란군을 호궤(犒饋)하도록 유도하였다. 또한 경기도 지평(砥平)에서 군사를 모으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덕규는 반란군이 서울에 진입할 때 참여하기로 하였는데, 신윤조가 동대문에서 들어오고 이사성이 서로에서 들어오고 남태징이 성안에서 일어나 화공(火攻)을 할 때 조덕규는 가노와 비부 중에서 건장하고 용맹한 자 수십 인을 모으고 조명규가 말을 장만하여 3월 15일에 일제히 모이기로 하였다. 물론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반란군을 모으는 과정에서 같은 가문 내에서 이견이 있기도 하여, 4촌 형제인 조관규(趙觀奎)의 경우 멸족을 우려하여 조덕규와 조상의 행동을 꾸짖기도 하였고, 조일규(趙一奎)의 경우는 반란 사실을 관가에 고하겠다고 했다가 조덕규에게 목침으로 얻어맞기도 하였다. 조덕규는 이후 죽산에서 반란군이 관군에게 패배하자 변복하고 이호(梨湖)를 건너 강릉에까지 숨어들었다가 추포 군관(追捕軍官)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만가보(萬家譜)』
- 『한국계항보(韓國系行譜)』(寶庫社,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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