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교(鄭希僑)의 자는 혜이(惠而)이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할아버지는 호군을 지낸 정경회(鄭景會)이고, 아버지 역시 역관으로 사역원 정을 지낸 정충헌(鄭忠獻)이다. 동생도 역과 출신인 정희창(鄭希昌)이다. 어머니는 청주 한씨(淸州韓氏) 한성로(韓成老)의 딸이고, 부인은 배천 조씨[白川趙氏] 조종익(趙宗益)의 딸이다.
정희교는 서울에서 거주하였다. 1633년(인조 11) 한학 전함(漢學前銜)으로, 역과 식년시에 응시해서 장원(壯元)으로 입격하였다. 한학교수와 교회(敎誨)를 역임했으며, 해주 역학을 지내기도 하였다. 1661년(현종 2) 2월 해주 역학의 임기 만료가 되어 최두남(崔斗南)으로 교체 예정이었으나, 당시 황해도 감사 정만화(鄭萬和)가 최두남이 연로한데다가 병이 있다고 하며 정희교의 유임(留任)을 요청하여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시에 능하여 「학주(鶴州)」라는 시명(詩名)이 있었고, 그가 지은 영사시(詠史詩)가 『해동유주(海東遺珠)』에 전한다. 시집 3권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