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선후기 문신 조형이 1660년 10월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연경에 파견될 때부터 다음 해 3월 국내로 돌아올 때까지의 공식적인 업무와 일정을 중심으로 일자 · 날씨와 수행 인원 및 노정 등을 차례로 기록하였다. 1661년(현종 2) 1월 1일 황제에게 진하하기 위해 궁궐에 나아갔으나, 황제의 상사(喪事)로 진하하지 못하고, 1월 20일 귀국길에 올라 2월 15일 의주를 거쳐 용천(龍川), 선천(宣川), 곽산(郭山)에 도착하였다는 기사까지를 내용을 한다. 사행의 노정과 청나라의 동정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정의
조선후기 문신 조형이 1660년 10월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개설
편찬/발간 경위
『취병공연행일기(翠屛公燕行日記)』는 1660년 동지사로 파견되었을 때의 사행 일기이다. 조형은 또한 통신사로 파견되었을 때에도 『부상일기(扶桑日記)』라는 사행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필사본인 이 책은 2001년에 간행된 『연행록전집』(20)에 수록되었다.
내용
1661년(현종 2) 1월 1일 황제에게 진하하기 위해 궁궐에 나아갔으나, 황제의 상사(喪事)로 진하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1월 7일 역관을 통해 예부에 자문(咨文)을 전하였고, 1월 8일에는 역관으로부터 황제의 부음(訃音)을 전해 듣기는 했으나 병의 유무는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였으며, 황제가 임종 직전에 둘째 아들을 계승권자로 지명하였고, 내대신(內大臣) 4명에게 보정(輔政)하게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1월 9일에는 역관으로부터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진하하는 예가 있을 것이므로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참석하였고, 1월 11일에는 전 황제에 대한 곡반(哭班)에 참석하였다. 이후 몇 차례 더 곡반에 참석한 뒤, 1월 20일에 귀국길에 올랐다. 2월 15일에 의주에 도착하였고, 이어 용천(龍川), 선천(宣川), 곽산(郭山)에 도착하였다는 기사까지를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 「중후소우음(中後所偶吟)」, 「산해관작(山海關作)」, 「도영평부부사서상장유이제묘지행서이시지(到永平府副使書狀將有夷齊廟之行書以示之)」 등 9편의 시를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예조판서 조공시장(禮曹判書趙公諡狀)」(이여, 『수곡집』)
- 『연행록전집』(20)(임기중 편저,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1)
- 「하버드대학 소장 『부상일기』의 구성과 의미」(구지현, 『열상고전연구』17, 열상고전연구회, 2003)
- 한국의 지식콘텐츠(www.krp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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