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상(吳允常)의 본관은 해주이고, 자는 사집(士執), 호는 영재(寧齋)이다. 할아버지는 오원(吳瑗)이고,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오재순(吳載純)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 이천보(李天輔)의 딸이다. 부인은 광산김씨 김상성(金相聖)의 딸이다. 1746년(영조 22) 1월에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783년(정조 7) 10월에 향년 38세로 사망하였다.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으로, 박윤원(朴胤源) 등과 교류하였다. 경학에 정통한 바, 관련 저술로 「대학차기(大學箚記)」와 「중용차기(中庸箚記)」가 있으며, 몇몇 잡기를 통해 『논어』와 『맹자』, 『시경』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한편 시문에서는 도연명(陶淵明)과 두보(杜甫), 그리고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문인으로는 동생인 오희상(吳熙常)과 김종선(金宗善)이 있다.
그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하였고, 이직보(李直輔)가 묘지명을 찬술하였다. 1878년(고종 15) 4월, 손자 오준영(吳俊泳)으로 인해 사복시정에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영재유고(寧齋遺稿)』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