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南懷仁, 1623~1688)는 벨기에 출신으로, 1659년 중국에 입국하여 마카오에 머물다가 샬 폰 벨(J. A. Schall von Bell, 湯若望)의 주선으로 1660년 북경(北京)에 들어갔다. 이후 샬 폰 벨을 보좌하며 천주교의 전교와 천문역법 업무에 힘썼다. 그는 양광선(楊光先)이 1664년에 주도한 역국대옥(曆局大獄)에 샬 폰 벨 등과 함께 연루되었다가 다음해 사면을 받았다. 이어 1668년에 역법에 관해 상소하여 흠천감(欽天監) 감정(監正) 양광선이 올린 1669년도 역서(曆書)의 오류를 지적했는데, 20명의 고위 관리와 중요 역법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철저히 조사하고 실험한 결과, 그의 지적이 합당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그는 양관선을 대신해 흠천감을 맡아 일하면서 선교활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샬 폰 벨도 복권되었으며, 광동에 감금당해 있던 선교사들도 자기 선교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바로 이 무렵에 그는 먼저와 나중의 순서가 있는 천주교 교리를 순서에 좇아 논하여 그 요지를 쉽게 드러낼 목적으로 『교요서론』을 저술하여 직접 지은 서문을 붙여 1670년(康熙 9)에 북경에서 1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은 문체가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논리적이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중간되어 널리 읽혔으며, 건륭제의 명령으로 1781년에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었다.
이 책의 본문은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첫째 부분에서는 천주의 속성, 천지 창조, 영혼 불멸, 천당 지옥 등 주요 교리를 13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고, 둘째 부분에서는 십계를 11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셋째 부문에서는 사도신경을 46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고, 넷째 부분에서는 주의 기도, 성모송, 성호경 등 주요 기도문을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한 다음 세례성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일찍이 조선에 전해져 학자들 사이에서 읽혔는데, 신유박해 때의 심문기록인 『사학징의(邪學懲義)』에는 김건순(金建淳)이 1789년(정조 13)에 삼전동 사람에게서 이 책을 얻어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정광수(鄭光受)가 장인인 윤현(尹鉉)의 방 구들장 밑에 숨겨 놓았다가 발각된 책들 중에 이 책의 1권이 있었다. 그리고 정복혜(鄭福惠)가 각처의 신자들에게서 거두어 들여 한신애(韓新愛)의 집에 묻어 두었다가 발각되어 소각된 책 중에는 한글본 『교요셔론』 1권이 있었다. 그러므로 『교요서론』은 늦어도 1789년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져 읽혔고, 1801년(순조 1) 이전에 이미 한글로 번역되어 초기 신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