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3월 3일 방경희(方敬熙)와 손유희(孫柔嬉)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레오, 수도명은 안드레아이다. 호는 무아(無我),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천주교 집안에서 성장하였지만, 어려서부터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14세에 정동관립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하여 1년 만에 졸업하고 다시 미동농업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수학했다. 17세 때인 1917년 9월 15일에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에 입학하여 6년 동안 교육을 받고 다시 대신학교(현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의 전신)에서 6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1930년 10월 3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이후 강원도 춘천 본당의 보좌신부로 사목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어 황해도 장연본당 보좌신부, 황해도 재령본당, 해주본당, 경기도 개성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1950년 서울 가회동본당, 서울 제기동본당의 주임신부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1954년 4월부터 1955년 10월까지 후암동본당 주임신부를 마지막으로 본당 사목생활에서 은퇴한 이후 1955년 10월 7일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한국인 수도자 양성과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수도회 설립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그 결과 개성 본당에서 사목생활을 하던 때인 1946년 4월 21일 한국의 복자들을 주보로 하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를 개성에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1949년 3월 8일 개성에서 현재의 자리인 서울 용산구 청파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입회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1951년 12월 12일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1953년 10월 30일에는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를, 그리고 1957년 3월 8일에는 ‘한국 순교 복자회 외부회’라는 재속 수도회를 설립하였으며, 1962년 10월 1일에는 외부회의 회원 가운데 40세 미만의 미망인들을 위한 수도 공동체인 ‘빨마(Palma)원’을 설립하였다.
1957년 5월 6일 수도회에서 종신 서원을 하고 난 이후 수도회의 총장이 되고 약 27년간 수도회 소속 수도자들의 영적 지도 신부로 활동하였다.
한편 수도회 창설 초기부터 자신이 깨달은 신비와 영적 체험을 100여 편이 넘은 시와 영가(靈歌)로 노트하고, 이것을 미사 강론에서 자주 발표하였다. 또한 동양 문화를 바탕으로 한 여러 수도 용어들을 창안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면형무아(麵形無我), 점성(點性), 침묵(沈黙), 대월(對越) 등이 있다. 면형무아란 하느님과의 합일된 상태를 묘사한 것인데, 나머지는 이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의 길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활동은 한국 천주교의 토착화에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86년 1월 24일 성북동의 순교 복자 수도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여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