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현(新賓縣) 영릉진(永陵鎭) 이도하자촌(二道河子村)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로성(舊老城)으로도 알려져 있다. 청나라 태조 누루하치[奴爾哈赤]가 다시쌓았다고도 전한다.
동쪽·남쪽·서쪽 등 3면은 산지로 둘러싸였고, 서북쪽은 소자하(蘇子河)의 지류로 가로막힌 천혜의 요새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곧해발 375m의 합이살산(哈爾薩山)에서 뻗어 내린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는데, 지형을 따랐기에 평면은 불규칙한 편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는데, 내성의 둘레는 960m이고, 외성의 둘레는 5.66㎞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위에 다시 흙을 더 쌓아 올린 구조인데, 일부 구간은 절벽을 천연 성벽으로 삼았다. 성문은 외성에 5곳, 내성에 6곳이 남아 있고, 옹성의 흔적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망대(望臺), 평대(平臺),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고, 유물도 출토되었다. 특히 건물터는 누르하치가 거주하던 한왕전(汗王殿)으로 추정되고 있다. 곧 누르하치는 1587년에 비아랍성을 축조한 뒤, 1603년에 혁도아랍성(赫圖阿拉城)으로 옮길 때까지 도성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595년에 신충일(申忠一, 1554∼1622)은 조선의 사신으로 비아랍성을 방문하였는데, 그가 쓴『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에는 당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산성은 문헌 기록에서 건주여진(建州女眞)이 축조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포곡식 산성의 구조, 자연석을 쌓고서 그 위에 흙을 다시 쌓은 축조 방법, 옹성 구조를 갖춘 문 등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릉진고성(永陵鎭古城)은 한나라 때 제2현도군(玄菟郡)의 치소였다가 그 뒤 고구려의 평지성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산성은 영릉진고성과 위치 관계 등을 따져 보면, 고구려의 방어용 거점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