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백화산(白華山)에 있는삼국시대(백제)에 초축되어 통일신라, 고려시대까지 사용된 성곽. 산성.
역사적 변천
내용
성 안에는 문터, 건물터, 치성(雉城), 우물 등이 남아 있다. 동문터는 북쪽 봉우리와 남쪽 봉우리를 잇는 능선이 만나는 마안부(馬鞍部)에 위치하며, 서문터는 군사도로를 내면서 파괴되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또한 성 안에는 평평한 대지가 곳곳에 있어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와 조각이나 토기 조각, 자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제법 많은 양이 출토된 기와 조각은 선조무늬[線條文]와 민무늬[無文]가 대부분이다.
한편, 백화산의 남쪽 봉우리 정상부에는 백화산성의 남쪽 성벽과 동쪽 성벽이 연결되는 곳에 봉수(烽燧)가 있다. 백화산 봉수는 처음으로 만든 시기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조선 후기에 전라도 순천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5거(炬) 봉수 노선에 속한 간봉(間烽)이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서산 북산 주산(主山) 봉수, 남쪽으로는 서산 도비산(都飛山) 봉수와 연결된다고 하였다.『증보문헌비고』의 봉수망 가운데 5거에는 3개의 간봉이 있었는데, 백화산 봉수는 간봉2에 해당되었다. 곧 전라도 옥구에서 갈라져 충청도 서해안을 따라 연결되는 간봉 노선에 속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여지도서(輿地圖書)』
- 『태안 백화산성 정비복원 및 지표조사보고서』(충청발전연구원, 2002)
- 『문화유적총람』─성곽・관아편─(충청남도, 1991)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태안 백화산성 문화유적 발굴(시굴)조사 개략보고서』,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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