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 ( )

공예
작품
문화재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양구.
작품/조각·공예
창작 연도
8세기 중반~10세기 전반
소장처
불교중앙박물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19년 05월 02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
내용 요약

대구광역시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양구이다. 2008년 경상북도 군위군 인각사 발굴조사 당시 승탑지로 추정되는 유구에서 발견된 금동병향로, 향합, 청동금고, 정병 등의 금속공예품과 중국산 청자 등 총 1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견된 유물은 대부분 공양구로 추정되며,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9년 5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의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양구.
내용

인각사(麟角寺)는 『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주석했던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2008년 인각사 5차 발굴 당시 승탑지(僧塔址)로 추정되는 유구에서 금동병향로, 향합, 청동금고(金鼓), 정병 등의 금속공예품 11점과 중국산 청자 7점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금속공예품은 발견 당시 청동금고 안에 청동접시, 청동향합, 소형의 가릉빈가 등이 있어 청동금고를 마치 외함(外函)처럼 활용하여 주1되어 있었다. 그리고 금고 옆쪽으로도 청동발과 청동 원통형 이중합, 금동병향로, 정병 등이 출토되었다.

인각사의 불교공예품들은 승탑지에서 발견되었지만, 승려의 사리장엄구로 볼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고 오히려 실제 사용했던 유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유물들을 금고 안에 넣고 질서정연한 유물의 조합으로 매납한 것 등으로 보아, 불교 의례에 맞춰 퇴장(退藏)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금고나 동종 안에 불교공예품을 넣고 땅 속에 묻은 사례는 경주 굴불사지, 창녕 말흘리 유적, 청주 사뇌사 및 문헌 등에서 종종 확인되지만, 이들의 매납 성격은 인각사의 경우와 동일하지는 않다. 즉, 의도적으로 규범에 맞추어 퇴장한 것과 전란 및 화재, 약탈 등 그에 버금가는 사건을 피하기 위해 퇴장했던 사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는 인각사, 후자는 경주 굴불사지, 창녕 말흘리 유적, 청주 사뇌사 등이다.

형태 및 특징

발견된 공양구들 중 먼저 병향로의 형태와 특징을 살펴보면, 병향로란 손잡이가 달린 향로로, 인각사의 것은 구연이 나팔처럼 벌어졌고, 노신(爐身)의 하단에는 공간을 두고 연판 모양의 받침을 마련하였다.

연판받침과 노신은 ‘s’자형의 장식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는 손잡이와도 연결되어 있다. 손잡이와 노신이 접합되는 상단 부위는 여의두문 장식을 덧대어 결합시켰으며, 손잡이 끝은 ‘ㄱ’자형으로 꺾어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사자상을 별도로 만들어 부착하였다.

청동 정병은 주구(注口)와 긴 목, 둥근테 그리고 첨대를 가진 전형적인 정병의 형태지만, 고려시대의 것보다 동체부가 세장한 편이며, 첨대가 8각으로 처리된 것이 주목된다.

청동 향합은 타원형의 동체 아래로 나팔처럼 벌어진 높은 굽을 두고 뚜껑의 상단에는 여러 개의 산개(傘蓋) 장식을 한 탑뉴개(塔鈕蓋) 형식이다.

청동금고는 앞면에 융기된 3줄의 동심원문을 둘렀으며, 중앙에 배치된 당좌 주위로는 연화문을 새겼다. 측면은 두텁게 처리되었고 뒤로 접힌 구연부의 폭은 넓게 조성되어 뒷면에 배치된 공명구(共鳴口)는 작은 편이다.

측면의 위쪽과 좌우 양쪽에 각기 1개씩 총 3개의 고리를 두어 금고를 걸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위쪽의 고리는 없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통일신라시대 금고로는 함통(咸通) 6년명(865년) 금고가 유일한데, 이와 비교해 볼 때, 인각사 청동금고는 형식과 장식적인 측면에서 진전된 양식을 보이며, 고려시대 기년명 금고들보다는 선행적인 측면을 보인다.

병향로, 정병, 향합, 금고 등 발견된 금속공예품의 대부분은 8~9세기 통일신라시대 작품들과 비교되어 이들의 같은 시대 조성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금속공예품 중에 청동으로 제작된 원통형 이중합은 주로 고려시대 사리장엄구에서 발견되는 형식이다. 특히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10세기 제작의 원통형 이중합, 997년에 제작된 안성 장명사 탑 내에서 발견된 원통형 이중합은 그 모습에 있어 인각사에서 출토된 원통형 이중합과 매우 유사하여 10세기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금속공예품 주위에서 해무리굽 청자 7점이 포개진 채 발견되었는데, 청자는 모두 전형적인 중국 월주요(越州窯)계 청자완이다. 청자완의 제작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어 인각사에서 출토된 금속공예품이 조성된 시기와 일치한다.

의의 및 평가

인각사 출토 공양구는 명확한 출토지와 공반 출토되는 유물들 간의 특징과 비교를 통해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되었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대 사찰 공양구의 기형(器形)과 기법, 양식 전개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사찰에 매납된 불교공예품의 성격이 전란이나 그에 준하는 사건을 피하기 위한 퇴장 행위 이외에도, 의례나 규범에 따라 불교공예품을 땅에 묻는 방식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각사 출토 공양구는 향후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함에 있어 귀중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2019년 5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땅 속에 묻힌 염원』(국립김해박물관, 2011)

논문

최명지, 「군위 인각사 탑지 출토 중국청자의 성격」(『인문과학연구』 21,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최응천, 「군위 인각사 출토 불교금속공예품의 성격과 의의」(『선사와 고대』 32, 한국고대학회, 2010)
김진덕, 「군위 인각사지 5차발굴조사 개보」(『신라사학보』 15, 신라사학회, 2009)
주석
주1

시신을 매장할 때 여러 가지 물건을 함께 묻어 바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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