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록색 유약을 입혀서 만든 항아리 2조로, 대호(大壺)와 소호(小壺)로 구성되어 있다. 두 항아리 모두 뚜껑을 갖추어 모두 4점이며, 외면 전체에 빼곡하게 인화문(印花文)이 장식되어 있다. 곱게 정선된 미세한 입자의 점토로 만들었으며, 외면 전체에 연유(鉛釉)를 입혔다.
연유란 유약 안에 산화납을 다량 포함시켜 저화도(底火度)인 700~800℃에서 용융시키는 유약을 말한다. 본래 투명하기 때문에 색을 내기 위해 금속산화물인 산화철이나 산화동을 첨가하여 산화염으로 구워낸다. 산화동을 첨가하면 녹색을 띠고, 산화철을 넣으면 갈색으로 발색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연유도기는 녹색 계열이 많아서 녹유(綠釉)로 통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 도기는 한국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삼국시대부터 등장하였으며, 도기뿐만 아니라 기와와 전돌 등에도 적용되었다. 연유를 입혀 구워내는 그릇이나 기와는 그렇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별도의 공정이 추가된 것이므로 제작 비용이 높다. 따라서 소량만 생산되어 특수한 목적이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는 외호(外壺)와 내호(內壺)로 구성된 한 세트의 화장용(火葬用) 뼈항아리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소호가 대호 안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같이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두 항아리의 전체적인 형태와 문양의 구성, 유약 상태 등이 매우 유사하여 같은 시기에 동일한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와 문양 구성 등을 통해 8세기 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품은 경주 남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호의 크기는 높이 39㎝, 입지름 19㎝, 바닥지름 20.7㎝이고, 전체적으로 황록색을 띤다. 비교적 얇고 균일하게 유약이 시유된 편이다. 그릇의 형태는 둥근 동체에 굽이 달려 있고, 목이 수직으로 올라가 있다. 목에서부터 동체 하단부까지 모두 9개의 문양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문양대는 두 줄의 가로 음각선으로 구분하였다.
문양은 도장을 이용한 인화기법(印花技法)으로 화문(花文), 연주문(連珠文), 이중원문(二重圓文), 능형문(綾形文) 등을 여러 방식으로 조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어깨 네 곳에는 동물 얼굴 모양의 손잡이를 달았는데, 틀로 모양을 찍어 낸 후 손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문질러서 붙였다. 손잡이 양쪽에 구멍을 뚫어 금속으로 된 고리를 끼울 수 있게 하였다. 뚜껑은 3단으로 구분하여 각각 연주문을 장식하였으며, 가장 중앙에 원통형의 꼭지를 달았다. 현재 뚜껑 일부가 수리된 상태이다.
소호의 크기는 높이 13㎝, 입지름 9.2㎝, 바닥지름 8.7㎝이고, 대호와 마찬가지로 둥근 동체에 굽이 달려 있다. 뚜껑은 원통형 꼭지가 달려 있다. 소호의 동체는 모두 6개의 문양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원문과 연주문이 장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대호보다 유약이 두껍게 시유되었으며, 뚜껑은 녹색인 반면 항아리는 동체 하단부로 갈수록 짙은 갈색을 띤다.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중 대호는 통일신라시대 연유 도기 항아리 중 가장 크고, 문양 소재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기물 전면에 빼곡하게 시문되어 있어 화려하다. 소호도 형태와 문양이 정제되어 있고 유약도 균일하게 시유되어 있어 현전하는 연유도기 중에서 상태가 좋은 편이다.
두 조 모두 8세기 통일신라 연유도기의 기술적 완성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조형적 ·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2019년 6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