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의 행장(行狀)인 『회암대사행적(晦菴大師行蹟)』에 그의 저서로 소개되어 있을 뿐, 책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제목에 들어있는 ‘은과(隱科)’의 정확한 의미는 파악할 수 없지만 동아시아의 경전 주석 전통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여러 주석가들은 경론의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세분하여 설명을 가했는데, 그 내용이 문자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주석서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해당 주석서의 본문을 주제별로 나누어[分科] 도식으로 표현한 과도(科圖)와 거기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과문을 제작하는 일이 널리 성행했는데, 본문이 길어질 경우 과도와 과문 자체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80권본 『화엄경(華嚴經)』을 주석한 징관의 책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하여 과문을 통한 강학(講學)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방광불화엄경소』의 전체적인 구조를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고 간략하게 제시하여 후학들의 강학을 돕기 위해 정혜가 『화엄경소은과(華嚴經疏隱科)』를 출간한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 이후 불교계에서는 선 수행 외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강경(講經)과 염불이 함께 행해졌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징관의 주석서를 중심으로 한 『화엄경』 연구가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