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경소기(觀經疏記)』는 고려 초기의 승려 의통(義通, 927~988)이 중국 천태종의 개조(開祖)인 지의(智顗, 538∼597)의 『관무량수경소(觀無量壽經疏)』를 주석한 책이다. 『관무량수경소기(觀無量壽經疏記)』라고도 한다. 몇 권인지 알 수 없으며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관경소기』는 의통의 가르침을 계승한 남송 시대의 승려 종효(宗曉, 1151~1214)가 지은 『사명존자교행록(四明尊者教行錄)』 권7에 수록되어 있는 『보운진조집(寶雲振祖集)』 중 「기통법사저술유적(紀通法師著述遺跡)」에서 언급되어 있다. 또한 남송의 승려 종감(宗鑑, ?~1206)이 편찬한 『석문정통(釋門正統)』 중 의통(義通)과 지반(志磐)이 편찬한 『불조통기(佛祖統紀)』 권8 「16조사보운의통(十六祖寶雲義通)」에도 의통의 대표 저술로 기록되어 있다.
『관경소기』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하나인 『관무량수불경』에 대한 주석서이다. 후대 정토신앙의 근본 경전으로 중시된 이 경전은 정토에 가기 위한 방법으로 극락정토(極樂淨土)와 아미타부처의 불신(佛身), 인간 세계 등을 명상하고 관찰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관무량수불경소』는 천태종의 개조인 지자대사(智者大師) 지의가 이 경전에 대해 해설한 내용을 제자인 관정(灌頂, 561~632)이 기록한 것으로 천태종의 주요 문헌 중 하나이다. 의통이 중국 사명(四明) 지역에서 천태종의 가르침을 펼칠 때 지의의 『관무량수경소』를 강의하면서 이 책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통은 『광명현찬석(光明玄贊釋)』도 함께 찬술하였는데, 이 책 역시 지의가 『금광명현경(金光明玄經)』에 대해 해설한 내용을 관정이 기록한 『금광명현의(金光明玄義)』에 대한 주석서이다. 이를 통해 의통이 지의의 저술을 토대로 천태종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펼쳤음을 알 수 있다.
『관경소기』는 의통의 제자로 후대 중국 천태종 산가파(山家派)의 시조가 되는 사명 지례(四明知禮, 960~1028)가 저술한 『관무량수불경묘종초(觀無量壽佛經疏妙宗鈔)』의 근거가 되었다. 후대 천태종 정토신앙의 근본 문헌으로 널리 읽힌 『관무량수불경묘종초』는 『관경소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불조통기』에서는 종효(宗曉)의 말을 인용하여 “의통이 붓을 들어 『관경소기』, 『광명현찬석(光明玄贊釋)』을 지었다고 한다. 대개 지례가 그 뜻을 이어받아 『기(記)』나 『초(鈔)』의 모든 문장에 사용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지례는 『묘종초』에서 의통이 실천한 염불수행을 천태종의 사종삼매(四種三昧) 가운데 상행삼매(常行三昧)와 연결하여 해석하였다. 상행삼매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모아 집중하는 수행법으로, 지의의 정토실천법이기도 하였다.
의통은 10세기 중엽 오월국(吳越國)에 유학하여 천태종 제15대 조사인 나계 의적의 문하에서 수행과 교학을 배운 후 귀국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역민들의 만류로 계속 중국에 머물러 천태종 16조가 되었다. 그는 이후 전교원(傳敎院)에서 주석(駐錫)하면서 가르침을 펼쳤는데, 전교원은 의통이 머무는 동안 크게 발전하였다. 이에 국왕은 전교원에 보운선원(寶雲禪院)이라 사액(賜額)하고, 의통을 보운존자(寶雲尊者)로 칭하였다. 의통의 가르침은 제자인 사명 지례와 자운 준식(慈雲遵式)에게 이어져 중국 천태종의 주류가 되었다.
의통의 『관경소기』는 중국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의 저술에 대한 주석서이다. 특히 지의의 가르침을 발전시킨 문헌이라는 점에서 불교 사상사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비록 현재 전하지 않지만 제자 지례가 지은 『묘종초』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따라서 『관경소기』는 후대 중국과 한국 천태종 정토사상의 기반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