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智義)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확인되지 않지만, 신라 문무왕과의 일화가 전하고 있어 참고된다. 문무왕과 교유관계가 있었던 그는 왕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문무왕이 이렇게 말하였다.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보호하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높이 받들며 나라를 지키고 싶소.” 지의는 비록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촉발되었다고는 하나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인간의 세계보다 더 낮은 단계인 축생(畜生)의 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문무왕의 생각에 의아해하였다. 이에 지의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용이란 짐승의 응보인데 어찌 용이 되려 하십니까?” 문무왕이 말하였다. “짐은 세간의 영화를 싫어한 지 이미 오래되었소. 만약 추한 응보로 짐승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짐이 평소에 바라던 바와 맞는다오.”
결국, 문무왕이 승하하자 지의는 그 뜻을 신문왕에게 전하였다. 왕의 유조(遺詔)에 따라 신문왕은 서역의 불교식으로 전왕(前王)을 화장하였다. 그리고는 그 유해를 동해 가운데에 떠 있는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냈다. 그 장골처(葬骨處)를 대왕암(大王岩)이라고 한다. 신문왕은 대왕암 인근의 대종천(大鐘川) 너머 산자락에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에서 감은사(感恩寺)을 세웠다.
지의에 관한 별도의 기록은 없지만, 왕이 유조를 남길 만큼 가까웠다는 점에서 문무왕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승려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