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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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개념
머리띠 형태의 금속제 관. 머리띠 형태의 관.
이칭
이칭
머리띠 형태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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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머리띠 형태의 금속제 관. 머리띠 형태의 관.
내용

머리띠만으로 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의 대관은 머리띠에 곧추세운 세움장식[立飾]을 부착하였다. 머리띠와 세움장식은 모두 얇은 금속판으로 만들었기에 안전하게 착용하기 위해 안쪽에 직물을 덧대었을 것이다.

대관의 재질은 착용자의 지위에 의해 엄격히 구분되었다. 위세품으로서 대관은 주로 금과 금동으로 만들었고, 은제는 매우 드물다. 구리로 만든 관[동관]은 신라에서 7세기 이후에 지방의 무당이 소유한 것으로 파악되며, 귀금속이 쓰이지 않았기에 더 이상 지위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없다.

대관은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서만 확인되는 독특한 형태의 관이다. 한반도의 신라 및 가야 그리고 일본열도의 왜(倭)에서 널리 쓰였으며, 백제의 남쪽 지방에서 소량 확인된다. 반면에 고구려의 전영역과 백제의 중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정된 분포권역과 4세기 말부터 제작되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대관은 불교라는 고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오지 않은 권역에서 재래종교와 관련된 복식으로 등장하였을 것이다.

신라의 경우, 대관을 착용하는 의례가 중앙에서는 확고히 정착되었으나, 지방에서는 단편적으로 수용하는 수준이었던 듯하다. 장례에서 중앙은 대관을 착용시켜 안장하는 게 보편적이었으나 지방은 피장자의 주변에 그냥 부장해 두는 게 더 많은 점에서, 중앙과 지방 사이에 의례상 간극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성인의 남자와 여자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무덤에서도 대관이 확인되는 점으로 볼 때, 성별과 나이에 따라 소유가 제한되지 않았다. 또한 하나의 무덤에 여러 개의 대관이 부장된 경우도 중앙과 지방에서 더러 확인된다. 사회전반으로 불교가 확산된 이후, 최후의 대관을 시골의 무당이 제의용 복식으로 착용한 점도 그 연원은 재래종교와 관계가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는 모관이 주로 성인 남자의 정치적 권위를 상징하는 복식으로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전역에서 확인되는 것과 분명히 다른 점이다.

신라와 가야에서는 금제 대관이 출토되는데, 이것을 연약한 재질적 특성 때문에 장의용품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신라의 금관은 크기에 따라 인위적으로 조성성분을 조정하였고, 클수록 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조보강도 함께 증가시킨 점으로 볼 때, 단순 장의용품으로 볼 수 없고 실제 사용한 복식으로 보아야만 한다. 또한 대관을 착용한 채 매장한 관습은 재래종교의 의례에 따라 진행된 장례의 결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고대 관의 분류체계에 대한 고찰」(함순섭, 『고대연구』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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