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천동 고분은 금호강의 남쪽 강변에 맞닿은 구릉 위에 있다. 이곳에서는 고산지구의 핵심인 선상지가 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금호강변의 북쪽 끝자락과 성동토성만 조망할 수 있다. 대구선 철도를 이곳으로 옮기게 되어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삭평되는 구릉을 발굴하였다. 조사는 삼국시대 분묘와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공방지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삼국시대 분묘는 돌덧널무덤(석곽묘) 204기, 돌방무덤(석실묘) 7기였으며, 다양한 질그릇과 철기류 그리고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 등 3,500여점이 수습되었다. 분묘는 대부분 수혈식 석곽묘였으며, 묘광을 등고선과 나란하게 판 것이 주류이지만 직교되거나 엇비슷한 것도 일부 있다. 단곽식뿐만 아니라 주부곽식도 확인되었다. 주부곽식에는 이혈주부곽과 동혈주부곽이 공존한다.
부장품은 장신구뿐만 아니라 질그릇들도 신라양식( 신라토기) 일색이었다. 이 고분군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부장품은 168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나뭇가지모양 대관[金銅製樹枝形帶冠]이다. 이 금동관은 신라양식에 속하지만, 물결무늬( 파상문)와 돌대 무늬처럼 전형적인 것에서 벗어난 퇴화단계의 요소를 지녔다. 또한 철탁과 함께 부장되었는데, 이러한 양상은 신라의 중앙에서 대관의 유행이 사라지고 지방에서 오히려 모방 제작하던 게 늘어나는 6세기 중엽 이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