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구광역시 서구에 있는 삼국시대 돌덧널무덤·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내용
일제강점기에 이 고분군에서 발굴 혹은 파괴로 모습을 드러낸 유구는 육안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고총고분이었다. 매장주체부는 대부분 횡구식석실(앞트기식 고분)이었는데, 부장공간인 부곽이 딸린 경우와 하나의 봉분 아래에 동등한 복수의 매장주체부를 두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석실벽을 커다란 판석으로 축조한 독특한 구조는 횡구식이 아니라 수혈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금동제 대관과 허리띠, 은제 모관과 허리띠, 다양한 무구와 말갖춤(마구), 석실 안을 밝힌 등잔 받침과 횃불받침 등등 최상급 부장품이 다량으로 발굴되었다. 고분군의 규모와 부장품의 질과 양으로 보아, 대구의 중심고분군임이 분명하다. 특히 당시 지역의 중심거점인 달성토성에 인접한 점에서 신라의 지방인 달구벌의 중심세력이 만든 묘역으로 파악된다.
도시의 확장과 무분별한 택지 개발로 가옥들에 완전히 묻혔던 고분군은 1998년의 경북대학교 박물관과 영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2008년의 대동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 2015년의 세종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를 거치며 조금씩 전모가 확인되고 있다. 즉 고총고분들 사이에 지표상에 흔적이 사라진 덧널무덤(목곽묘)들과 돌덧널무덤(석곽묘)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고분군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대구 달성유적Ⅰ-달성 조사보고서-』(이현태, 국립대구박물관, 2014)
- 「대구 달성고분군에 대한 소고」(함순섭, 『석오윤용진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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