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변동고분은 삼국시대의 분묘와 건물지가 복합된 유적이며, 고려와 조선의 분묘도 있다. 삼국시대에 대구의 하부 행정단위 가운데 하나였던 팔거리(八居里)의 치소이자 군사거점은 팔거산성(八莒山城)이었다. 고분은 팔거산성이 자리잡은 함지산의 남동쪽 능선 끝자락에 있으므로, 팔거리에 소속된 집단의 분묘로 볼 수 있다. 팔거리의 중심 분묘는 팔달동에서 구암동을 잇는 함지산의 서북쪽 능선에 있다.
대구서변동고분은 금호강의 북쪽 강변에 맞닿은 구릉에 있는데 강 너머 남쪽으로 대구분지가 모두 조망되며, 아래에는 금호강으로 합류되는 동화천 주변에 좁은 곡간평야가 있다. 곡간평야에는 신석기시대 이래로 마을과 경작지가 끊임없이 있었으며, 곡간평야 너머 동쪽 대척점에 동변동고분군이 있다. 서변동과 경부고속도로의 북대구 나들목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기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8년부터 1999년까지 Ⅰ, Ⅱ, Ⅲ 지구로 나누어 발굴하였다. Ⅰ지구에서는 삼국시대의 목곽묘 94기를 비롯하여 횡구식 및 수혈식 석곽 4기와 고려 조선의 목곽묘, Ⅱ지구에서는 삼국시대 목곽묘 1기와 석곽묘 53기 그리고 주거지 6기, Ⅲ 지구에서는 고상건물지가 조사되었다.
발굴된 분묘의 대부분은 목곽묘이다. 목곽묘는 등고선에 나란하게 묘광을 팠으며, 장폭비 3:1 이상의 좁고 긴 것이 많다. 단곽식이 주류를 이루며, 동일묘광을 격벽으로 나눈 주부곽식은 드물다. 부장된 질그릇으로 보아 회색 연질이 부장된 분묘, 회색 연질과 회청색 경질이 함께 부장된 분묘, 회청색 경질만 부장된 분묘가 있다. 기종은 노형토기, 양이부장동호, 양이부첨저호, 단경호, 고배 등이다. 철모, 철부, 철촉, 환두대도, 유자이기 등의 철기류와 약간의 유리구슬이 출토되었다. 석곽묘는 여럿을 연잇거나 2기를 붙여 하나의 봉분 아래에 두었다. 고배, 장경호, 단경호, 철촉이 출토되었다.
목곽묘는 3세기 중반부터 4세기에 축조되었으며, 대부분 세장한 형태로 소위 '경주형 목곽묘'라 일컫는 것이다. 석곽묘는 5세기의 것이다. 분묘의 중심연대가 4세기인데 이미 이 즈음에 경주의 세력과 이 지역이 일정하게 문화상을 공유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