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井]’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또한 ‘우물’은 공동체 생활을 하던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해주던 실용적 목적의 설비이다. 이로 인해 물과 관련된 다양한 신화적 상징성을 담은 성소(聖所)이자 생명의 원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고대 사람들에게 천(川), 정(井), 지(池), 하(河) 등은 신령한 존재가 있는 곳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영적 존재로서 인정되었다. '우물'은 생명의 탄생과 잉태공간으로서 신화적 상징성과 의미를 갖고 있다. 신라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강처인 나정(蘿井)과 그의 비인 알영(閼英)의 탄생처인 알영정(閼英井)이 모두 신성한 장소로서 우물을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이 세상을 통치할 영웅의 탄생처로 인식되는 또 다른 이야기는 신라 원성대왕이 우물과 관련된 꿈을 꾸고 왕이 되었다는 전승이다. 반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가져다줄 민중의 영웅이 변혁을 꿈꾸다 실패하는 공간으로서도 우물을 설정하는 데 ‘아기장수 이야기’가 그에 해당한다.
'우물'은 생명 잉태를 하기 위한 공간적 의미가 확장되어 남녀의 만남을 연결시켜주는 인연의 공간으로서도 인식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 조선 태조 이성계와 그 부인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은 『북사』, 『후한서』 의 옥저에 관한 기록 속에 나오는 여인국의 신이한 우물[神井]에도 보인다. 여인이 우물을 들여다보면 자식을 잉태한다고 전해진다. 우물물에 담긴 해를 떠먹고 태기가 있어 출생했다는 신라의 범일국사(梵日國師) 출생담과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 출생담도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신화적 세계관에서 탈피해 현실적인 인연의 공간으로 우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나타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우물은 국운을 점치는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백제 온조왕 25년에 전하는 왕궁의 우물이 갑자기 넘치는 현상을 국운이 왕성해지는 징조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의자왕 5년의 백제 수도 사비의 우물물이 핏빛으로 변하였다는 현상을 들어 국운이 위태로움을 예시하는 상징으로 ‘우물’을 인식하고 있다. 신라에서도 혜공왕 4년에 샘과 우물이 마르더니 대공(大恭) 등이 큰 난을 일으켜 나라가 위태로웠다는 기록을 통해 국가의 존망을 ‘우물’과 연결시키는 인식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물은 왕권의 상징으로서 물을 매개로 복속의례를 거행하기도 했다. 백제 왕은 호와 병에 각지의 물[聖水]을 담아 온 지방세력과 함께 우물에 물을 붓고 우물제사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이는 지방세력을 통합하기 위한 의례적인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물이 갖는 신성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활용이다.
이러한 ‘우물’에 대한 관념은 고려 건국신화에 나오는 왕건의 조부 ‘작제건’ 이야기 속의 용녀 이야기와 개성 한우물[大井]에서의 국가제의가 봄·가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우물’의 상징성에 등장하는 매개체는 용으로 이는 수신(水神)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 분황사 우물의 호국룡과 고려의 한우물에 등장하는 세 곳 용왕으로 지칭되는 용이다. 우물은 수신의 거주처이면서 용궁 또는 수신의 세계로 가는 연결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는데, 건국신화와 의식에 있어 물을 관장하는 능력 및 물의 생명력에 따른 풍요의식과 관련이 있다.
또한 우물에는 재생과 치유의 기능을 가진 공간이라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우물이 등장하는 설화에서 가장 흔하고 널리 알려진 것은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우물물을 먹거나 바르거나 하여 병을 고쳤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우물물로 병을 고치는 효능 때문에 숭배되는 양상은 현행 민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약효가 있다고 믿어지는 산에 있는 우물이나 샘 주변에 산신당이나 용신당이 세워져 있고, 이곳에 영험한 약수를 관장하는 용궁할머니 같은 존재가 섬겨지고 있는데 우물 관련 설화와 민속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우물은 무속과 관련해 중요한 신앙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마을굿에서 하는 우물굿이나 샘굿, 정제(井祭) 등은 우물에 금줄을 치고 우물물이 맑고 풍부하게 잘 공급되기를 기원하는 축원이 주가 된다. 더불어 물의 생명력처럼 재물이 불어나며 질병이 치유되고 무병장수 하기를 바라는 등 물의 상징성도 기원의 내용이 된다.
또한 세시풍속에서도 우물과 관련된 의식들이 치러지고 있다. 정월이나 칠월 초하루에 당제에 이어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우물고사를 치른다. 또한 정월 대보름에 여인들이 우물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바가지로 떠서 마시는 풍습과 ‘용알뜨기’라 하여 첫 닭이 울 때 부인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우물물을 긷는 풍속이 그것이다.
생명의 원천인 물을 공급해주는 장소이자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으로서 우물에 대한 숭배는 신성한 존재의 탄생지이자 국운을 점치는 장소로 숭앙되었다. 이 관념은 인간의 생명 탄생과 길흉화복을 관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공간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민간제의의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