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회의는 5나부의 지배층인 제가(諸加)로 구성되었다. 고구려는 5나부의 연맹을 통해 국가를 형성하고 국정을 운영하였으며 나부의 지배층인 제가가 국정 운영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구려는 5나부(那部)의 연맹을 통해 국가를 형성하였는데, 3세기 즉 초기까지 나부는 국가운영의 중요한 정치단위였다. 5나부의 지배층은 가(加)였다. 제가(諸加)는 나부의 읍락을 지배하였는데, 세력규모에 따라 대가(大加)와 소가(小加)로 구분되었다.
제가는 기본적으로 왕권에 복속되었지만 대가의 경우 국왕과 별도로 신료집단을 보유할 만큼 나부에 대한 지배력이 강하였다. 따라서 고구려 초기에 중요한 국사를 결정하는 데에는 제가의 합의가 요구되었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에서는 죄인이 생기면 제가(諸加)가 평의(評議)해 처결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제가 평의의 회의, 다시 말해 제가회의에서 죄인에 대한 재판을 비롯해 국정의 주요 사항을 심의함으로써 5나부의 합의를 도출하였다. 구체적으로 왕위계승과 재정, 외교 · 전쟁이 주요 심의 · 의결되었고, 나부 간의 갈등도 여기서 조율되었다.
제가회의의 대표자는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 상가(相加)였다. 일반적으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국상(國相)이 상가를 의미한다고 보지만, 그와 달리 국상은 제가가 아니라 국왕 휘하의 신료집단을 대표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국왕도 제가회의의 구성원으로 국왕이 제가회의를 주재하였지만, 일정 시점부터 상가 내지 국상이 제가회의를 대표하였다. 왕권이 강화되며 제가회의는 국왕 아래의 정치회의로 변모한 것이다. 상가와 국상이 동일한 존재였다면, 그 시점은 국상이 설치 · 정비된 2세기 중 · 후반(신대왕~고국천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5나부는 3세기를 거치며 소멸되었고, 왕도(王都) · 왕기(王畿)를 중심으로 한 방위명의 5부로 재편되었다. 이와 함께 5나부의 제가는 국왕으로부터 관등 · 관직을 수여받음으로써 중앙의 귀족관료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4세기 이후 제가회의는 소멸되었고, 그 기능은 귀족관료의 정치회의로 대체되었다.
제가회의는 5나부 연맹의 국가체제 · 정치제제를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