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은 바로 이 보살 수행자가 발심해서 수행하는 목적을 상(上) · 하(下)라는 방향성에 근거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즉 보살은 위로는 불교의 지혜인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고통 받는 다양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불교에서 말하는 두 가지 이익, 곧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에 각각 대응된다.
대승불교에서는 성문 · 연각 · 보살을 삼승(三乘), 곧 불교를 수행하는 세 부류의 수행자로 보았는데, 이 가운데 성문 · 연각을 이승(二乘)으로 칭한다. 반면 보살은 앞의 두 부류와 결정적으로 다른 수행자로 분류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하화중생에 있다. 앞의 두 부류가 자신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반면, 보살은 깨달음과 더불어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함께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위로 보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은 지혜이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자비이다. 성문 · 연각은 지혜 하나만 갖춘 반면, 보살은 지혜와 자비의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이를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런 점에 의거하여 성문 · 연각보다 보살을 더욱 훌륭한 수행자로 간주한다.
문구의 측면에서 보면, 동아시아에서 상구보리하화중생이라는 표현이 정형화된 것은 9세기 이후로 보인다. 그 이전의 한문 불전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뜻은 같지만 표현이 조금씩 다른 문구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불교는 대부분 대승불교를 표방해왔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수행자상인 보살이 매우 중시되었고, 보살의 수행 목표인 상구보리하화중생 역시 우리나라의 불교도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신라의 원효는 『기신론소(起信論疏)』에서 『대승기신론』을 지은 대의가 보살의 두 가지 목표인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평했을 만큼 이 두 가지 목표는 중요성을 가진다. 두 가지 가운데 특히 하화중생은 불교가 사회의 대중 속에서 실현되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불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