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44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령으로 한광반을 수료한 43명과 함께 임천을 떠나 6천 리(2,356㎞) 장정(長征)의 고난을 극복하며, 1945년 1월 30일 신송식(申松植) 교관의 인도로 충칭〔重慶〕에 도착하여 대환영을 받았다. 이 사실은 충칭 내 각 신문사가 대서특필하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을 극찬하였고, 중국의 조야 요인들도 한국 청년 일행을 환영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홍석훈은 중국중앙군사위원회(中國中央軍事委員會)의 9개 항 행동준승(行動準繩) 폐기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주성 회복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였다. 1945년 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大韓民國臨時議政院) 서기로 임명되었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잠행중앙관제(暫行中央官制)에 따라 선전부원으로 임명되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政訓處) 부관으로 근무하면서 대적방송을 통하여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등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선전하였다. 6월에는 시안〔西安〕 산시성〔陝西省〕의 광복군 제2지대로 배속되어 한미 합작 특수훈련(OSS 훈련) 제2진으로 선발되어 훈련 과정을 모두 수료한 후 한국 후방의 특수공작 임무를 맡은 공작조(工作組)에 편성되어 한국 내 정진군(挺進軍)으로 출발하여 대기 중 8 · 15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9월 8일 중국 충칭에서 병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논문
- 이현희, 「중경임정과 한국광복군연구」(『한민족운동사연구』 6, 한민족운동사학회, 1992)
신문
- 『독립신문』(1945. 1. 10.)
- 『독립신문』(1945. 3. 1.)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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