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은 개벽사에서 1922년 6월부터 1923년 9월까지 발행되던 여성잡지이다. 1923년 9월에 천도교청년회의 주도로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을 대상으로 한 잡지인 『신여성(新女性)』으로 재창간되었다. 잡지 재창간의 주요 목표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여권 신장, 의식 계발에 두었으며, 특히 여성교육과 여성노동, 여성일자리 확대를 가장 지속적으로 다루었다. 창간이후 1934년 8월호까지 발간되었지만, 1926년 11월부터 1930년 12월까지는 개벽사 발행의 『별건곤(別乾坤)』에 통합시켜 잡지가 발행되지 않았다.
천도교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근간으로 한 남녀평등을 중시하여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혁신과 신여성상(新女性像)의 정립을 위한 여성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를 확장하기 위해 여성잡지 발간을 통한 여성계몽에도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미 1922년 6월에 『부인』을 창간하여 1923년 9월까지 통권 16호를 발행하였다. 그러나 구독층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근대적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층을 독자로 확보할 필요성을 중시하고 1923년 9월부터 잡지명을 변경하여 발행한 것이다.
창간호 편집은 박달성이 담당했으며 제3호부터는 방정환이 맡았다가 1931년 7월호 이후 차상찬이 책임을 맡았다. 초기에는 따로 신여성부기자가 배치되지 않고 박달성(朴達成)이나 방정환 등 발행 겸 편집인이 혼자 편집 책임을 졌다. 창간 1년 후에 비로소 전담 기자가 배치되기 시작했고, 부인 기자도 뽑게 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출판 허가를 받으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서 출판법으로 허가를 받았다.
편집 겸 발행인 박달성, 인쇄인 민영순(閔泳純), 인쇄소 대동인쇄주식회사(大東印刷株式會社), 발행소 개벽사다. 잡지의 판형은 국판으로 국한문 혼용체를 취했으며, 본문은 100면 정도로 편성하였다. 정가는 우세(郵稅) 포함 30전이며, 6개월분은 1원 60전이고 1년분은 3원이다.
1923년 9월 15일 창간호를 낸 뒤 1926년 10월까지 모두 31권을 내고 휴간했다. 1931년 1월에 복간하여 1934년 8월호까지 발간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연세대학술정보원, 아단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케포이북스에서 2009년과 2012년 영인본을 출판하였다.
여성들을 위한 일반교양이나 계몽을 촉구하는 논문·시·소설·수필 등의 문학작품을 실었고, 아동문학에도 관심을 보여 동요나 동화를 실었다. 개벽사의 정치적 노선을 수용하여 「여성의 계급적 지위」, 「약한 여성과 노동계급의 기원」 등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논문도 게재하여 동시대의 상업적인 여성잡지와는 다른 양상도 보여주었다. 기사내용으로는 연애와 결혼, 여성운동과 계몽, 여성교육 등을 많이 다루었으며, 여성의 외모, 여성의 직업, 취미 등 다양한 주제들이 실렸다.
주요필진은 이돈화, 김기전, 박달성, 주요섭, 방정환, 차상찬 등 개벽사원들이었으며, 현철, 최영주, 신형철, 윤석중, 김규택, 안석주 등도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여성잡지이지만 동시대 여성잡지와 마찬가지로 남성들이 주요필진이란 한계를 갖고 있다. 잡지의 표지 및 삽화를 김규택, 안석주 등이 담당하였다. 여성기자로 활약한 인물은 허정숙(許貞淑, 필명;晶淑, 貞琡, 許, 스카이, SKY, 七寶山人), 박경식(朴敬植, 필명: P생, KS생, P.K.S 등), 김원주(金源珠), 송계월(宋桂月), 이선희(李善熙) 등을 꼽을 수 있다.
독자의 범위는 교육 받은 신여성부터 일반 부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독자란'에서 이름은 가명과 본명을 반반씩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독자들의 거주 지역을 명시하였다. 이에 독자의 분포범위를 추측할 수 있는데, 그 규모가 전국은 물론 해외로까지 확대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여성지였다.
생활 개선, 도덕과 미풍 조성, 자녀 교양, 취미 활동 등을 소개하면서 낙후한 한국여성의 교양을 높이고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권신장 및 의식계발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제강점기 가장 장기간 발행된 여성잡지로, 발간된 양으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여성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내용들이 게재되었고, 전체 글의 약 26%를 여성들이 집필하며 잡지 발간에 참여하였던 점, 독자들이 전국은 물론 해외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신여성부터 일반 부인까지 구독하였던 일제시기 대표적인 여성잡지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아울러 신여성이란 개념 및 신여성 담론을 주도한 대중지로서의 성격이 여타의 잡지, 매체들에 비해 강한 잡지였다는 점에서 일제시기 '신여성'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분석하는데 유익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