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복식연우회 ()

의생활
단체
1955년 6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 연합을 주축으로 설립된 복식 전문가 단체.
단체
설립 시기
1955년 6월
해체 시기
1961년
설립자
권갑순, 김경애, 방재숙, 서수연, 석주선, 최경자, 최복녀, 한희도 외 3인
후신
(사단법인)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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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한복식연우회(大韓服食硏友會)는 1955년 6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 연합을 주축으로 설립된 복식 전문가 단체이다. 1961년에 시행된 정부 사회부의 ‘유사 단체통합령’으로 인해 대한복식연우회는 한국디자이너협회와 1961년 8월 27일 (사단법인)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로 통합되었다.

정의
1955년 6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 연합을 주축으로 설립된 복식 전문가 단체.
설립 목적

대한복식연우회(大韓服食硏友會)는 명동양장점 및 양재학원을 주축으로 연합체의 공동 발전을 위해 1955년 6월 설립되었다.

변천 및 현황

대한복식연우회의 초대 회장은 국제양장사의 최경자이며, 부회장은 아리사양장점의 서수연, 이사는 경기양재학원 원장 김경애, 서울편물학원 원장 권갑순, 수예가 최복녀, 고전복식연구가 석주선, 총무는 한양장점의 한희도, 방재숙 등으로 11명이 연합체의 창립 임원이다.

설립 초기에는 양재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1960년 3월 총회에서 한재, 편물, 수예, 꽃꽂이, 조화, 액세서리, 인형, 목공예의 9개 분과를 만들며 복식 분야를 “우리 생활 주변의 미화를 위한 영역”으로 확장 해석하여 양장점 디자이너, 양재학원, 복식 전문가, 여학교의 수예 재봉 담당교사, 부녀자 등 100여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단체가 되었다.

1961년에 시행된 정부 사회부의 「유사 단체통합령」으로 대한복식연우회는 한국디자이너협회(회장 ‘살롱 드 모드’ 이종천)와 1961년 8월 27일 하오 3시 (사단법인)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로 통합되었고 초대 이사진 15명을 선출하였다. 이사장은 국제복장학원 원장 최경자이며, 임원진의 경우 전무는 아담양장점의 오례종, 상무 겸 선전은 아리사양장점의 서수연, 총무는 국제복장학원 강사 윤진갈복, 재무는 경기양재학원 원장 김경애, 사업 · 섭외는 한국민예사의 견덕균, 조직은 서라벌양재학원 원장 박순기, 교육은 서울편물학원 원장 용갑순, 양재분과위원장은 보오그양장점의 한희도, 감사는 제일편물점의 김순희, 평이사는 라모드양장점의 최금린, 조타양장점의 박광현, 디자이너 강말원, 디자이너 손경자, 뉴스타일양재학원 원장 김필중이었다. 현재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의 2020년 제22대 회장은 디자이너 정훈종이다.

주요 활동

대한복식연우회는 1955년 설립 직후 일본 기독교 경제인 단체(C · E · C)와 교섭하여 이사 11명이 일본동경여자대학, 메지로여자대학, 오챠노미즈여자대학, 영양단기대학, 문화복장학원, 메지로모델학교, 드레스메이커여학원, 편물학원 등을 시찰하였다. 또한, 같은 해 11월에는 문교부 「술어편찬위원회」 사업에 참여하여 일본어 독음으로 사용되고 있는 양재 전문 용어를 우리말로 변환하는 표준화 작업을 하였다.

1957년부터는 회원들의 공동 이익을 위해 “수입의 일부를 기금으로 한다.”라는 규정을 만들고 바자회를 개최하였다. 각 부문에 종사하는 회원들이 만든 의류, 편물, 액세서리, 조화, 생화, 인형, 수예, 공예, 한복 등의 상품이 출품된 바자회는 신세계 화랑, 신문회관, 학교 강당 등에서 개최되며 하루 매상은 80만 원 정도였다.

1960년 5월 31일부터 6월 4일까지 6일간 국립도서관 별관에서 열린 대한복식연우회의 「복장수예 전시 및 즉매전」에는 양장, 생화, 조화, 한재, 편물, 수예, 액세서리 등 1,500점이 출품되었고, 이 바자회의 수입금 일부는 4 · 19 학생 의거 학보 조위금으로 편성되었다. 같은 해 9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중앙공보관에서 개최된 「제2회 작품전시와 즉매전」은 제1실 디자이너들의 연구 작품관, 제2실 일반 회원관으로 나누어 진행되고 작품마다 정가를 표기하였다. 이 시기 대한복식연우회에는 일반 부녀자 회원의 가입이 늘어 이들의 교육을 위한 분야별 강좌가 매달 한 차례씩 개설되었다.

1961년 2월 1일부터 6일까지 6일간 중앙공보관 제1실에서는 한국민예사와 대한복식연우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견덕균 인형전」이 열려 어린이를 주제로 한 서양 인형 100여 점이 발표되었다. 더불어, 1961년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 국립도서관 전시장에서 열린 대한복식연우회 제3회 작품전시회에서는 양재, 수예, 인형, 조화, 생화, 꽃꽂이, 편물 등이 전시되었다.

같은 해 대한복식연우회는 7월 4일부터 10일까지 7일간 동화백화점 4층에서 열린 「제1회 모던 수공예전」을 후원하였는데, 한국민예사가 주최한 이 전시에는 대한복식연우회 회원인 9명의 가정주부들이 제작한 동양자수로 된 병풍, 노란 생모시에 수놓은 커튼, 방석, 인형, 양재, 실내 장식 등 천여 점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또한, 대한복식연우회는 1961년 5 · 16 이후 재건국민운동본부의 범국민재건 실천 방법으로 제안된 ‘간소복 입기 운동’의 일환인 신생활 운동을 위한 전시회와 바자회 등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대한복식연우회는 연합체의 공동 이익을 위해 활동하였고, 일반인 회원들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여 신생활 분야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최경자, 『최경자와 함께한 패션 70년』(사단법인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1999)

논문

박신미, 「제1세대 한국 패션디자이너 최경자 고찰: 매체분석을 통해 밝혀진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활동을 중심으로」(『복식』 69-3, 한국복식학회, 2019)

기타 자료

‘제75화 패션50년’(『중앙일보』 1981.10.20.)
‘여성과 생활미화’(『조선일보』 1961.07.11.)
‘제1회 모던 수공예전’(『동아일보』 1961.07.08.)
‘알림’(『경향신문』 1961.07.01.)
‘복식연우회서 20일부터 작품전시’(『동아일보』 1961.05.23.)
‘작품전시회’(『조선일보』 1961.05.20.)
‘제1회 견덕균 인형전’(『조선일보』 1961.02.02.)
‘제2회작품전시와 즉매전’(『조선일보』 1960.09.23.)
‘복장전시회’(『조선일보』 1960.06.04.)
‘대한복식 연우회 복장수예 전시회’(『경향신문』 1960.05.27.)

인터넷 자료

국가기록원: 사치한 옷차림에 집안 살림 무너진다(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impleClothes.do)
한국섬유신문(http://www.k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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