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복은 현대 한국 제과 제빵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이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법정학부를 다니던 중 제과 제빵 업계에 입문하였다. 태극당에서 일을 하다가 일본 동경 고등제과학교를 졸업한 후 국내에 돌아와 풍년제과에서 일을 하던 중 제과기술협회 제3대 회장에 피선되었다. 제5회 서울 국제 빵 과자전 심사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제과 제빵 기능 검정 출제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8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양과자 연맹 일본대회’에서 ‘세계 평화의 종’이라는 작품으로 대회 회장상인 은상을 수상하였다.
김충복은 1931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태어났다. 국내에 돌아와 활동을 하다가 제과 제빵 기술을 익히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이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였다. 1995년 12월 11일에 사망하였다.
김충복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국내에 돌아와 홍익대학교 법정학부 법률과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과 제빵 업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후 제과 제빵 기술에 흥미를 느껴 법조인(法曹人)의 길을 포기하고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1956년에는 태극당에 입사하여 공장장으로 10년 동안 근무하였다. 이후 1968년에는 일본 식품 학원인 동경고등제과학교(東京高等製菓學校)를 수료하고 같은 해 풍년제과에 입사하여 공장장으로 일하였다. 그는 후배들에게 빵의 기본기를 가르치고 어느 정도 기술이 완성되면 더 크고 좋은 제과점으로 이직시키는 동료애를 보여 주었다. 1969년에는 사단법인 제과기술협회 제3대 회장에 피선되었고, 이후에도 일본 빵 연구소 등을 수료하고 일본 빵 기술사 시험에 합격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또한 제5회 서울 국제 빵 과자전 심사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제과 제빵 기능 검정 출제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78년에는 국내 최초로 주인 이름을 내건 김충복과자점을 개점하여 운영하면서 과거의 제과점에서 이름을 짓는 방식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였다.
김충복은 우리나라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던 일본으로부터 선진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나라 제과 기술 향상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 때문에 그를 따르는 후학들이 매우 많았으며 그가 사망했을 때 사단 법인 대한제과협회장으로 장례가 거행되었다.
김충복은 1968년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양과자 연맹 일본대회’에서 ‘세계 평화의 종’이라는 작품으로 대회 회장상인 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일본 전국 과자 대전람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여 공예 과자 부분에서 기술 우수상을 받았고, 같은 해 세계양과자 연맹 주최 17개국 대회에서 대회장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