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공윤택은 인천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제과 제빵 장인이다. 일본에 건너가 어려운 환경에서 전문점을 찾아다니며 특색 있는 기술을 배우고 8년 만에 귀국하였다. 1942년 관동군 사령부 제과부의 판임관 대우로 입대한 후 3년간 복무하고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종로1가에서 고려당이 창업을 하였을 때 업계에 널리 알려진 공윤택을 기용하여 제품의 종류와 생산 일체를 책임지고 생산하게 되었다. 특히 맛, 컬러, 위생을 중요시하여 기술인들이 하얀 조리복, 앞치마, 모자 등을 착용하고 일을 하게 하여 제과업계 초창기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정의
인천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제과 제빵 장인.
인적사항
주요 활동
1947년 종로1가에 문을 연 고려당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공윤택을 기용하여 제품의 종류와 생산 일체를 일임하였다. 공윤택은 보수 역시 일정액의 월급을 받지 않고 생산되는 제품량에 따라 회사와 자신이 정한 비율로 보수를 받았다.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만주 등지에서 배운 러시아 케이크와 캔디를 만들어 마루캉, 코코아롱구, 초코봉봉 등을 만들었다. 또한 고려당의 히트 상품인 파운드케이크, 사라다빵, 화과자, 슈크림빵 등은 그가 개발한 제품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맛, 컬러, 위생을 중요하게 여겨 고급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맛을 냈고 너무 화려하지 않은 적절한 제품의 색을 유지하였으며 특히 화과자의 색을 매우 아름답게 만들었다. 공윤택은 위생에 대한 개념이 투철해 기술인들이 하얀 조리복, 앞치마, 모자 등을 착용하고 일을 하게 하여 제과업계 초창기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한국 제과계의 1세대 기술자로서 김환식과 함께 제과 제빵 기술인의 권위자로 평가되며 대한제과기술협회장을 지냈다.
참고문헌
단행본
- 대한제과협회, 『베이커리』 1(1994)
- 대한제과협회, 『베이커리』 10(1996)
- 조승환, 『한국 빵과자 문화사』(베이커리, 2004)
- 이선우, 『제과계 산책-제과업계와 함께한 애환 30년의 발자취-』(동재, 2007)
기타 자료
- '국내 첫 제과공 공윤택 씨', 『경향신문』(1983.12.2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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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황해도 서남쪽에 있는 시. 예로부터 중국과의 교통 요충지이며, 수산물ㆍ공산물이 주로 난다. 명승지로 부용당, 신광사, 탁열정(濯熱亭), 수양산성지 따위가 있다. 황해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206.93㎢.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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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평안북도 서북부에 있는 시. 만주를 경유하는 압록강 철교가 이어진 국제적 교통 요지이며, 평양 다음가는 공업 도시로 방적 공업이 발달하였다.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10.6㎢.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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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평안남도 서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 농업ㆍ어업ㆍ광업ㆍ공업 생산물의 집산지이다. 제련소가 있으며 광석, 시멘트, 과실, 쌀, 밀 따위를 수출한다. 우산장(牛山莊), 보림사(寶林寺), 용강 온천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면적은 413㎢. 북한에서는 1979년 12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평안남도에서 갈라져 나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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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전시에 교전국에 의해 사로잡힌 사람. 엄밀하게 따지면 정식으로 편성된 군대의 군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만, 넓게는 게릴라병, 무기를 들고 투항하는 민간인, 군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비전투원도 포함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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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세상에 내놓거나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은 상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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