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없애기 운동 ( 없애기 )

식생활
사건
1968년,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장독대를 없애는 대신에 공업화하여 시판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사 먹자고 추진한 사회 운동.
사건/사회운동
발생 시기
1968년
종결 시기
1970년
발생 장소
서울특별시 등
관련 국가
대한민국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장독대 없애기 운동은 1968년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장독대를 없애는 대신에 공업화하여 시판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사 먹자고 추진한 사회 운동이다. 서울특별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가정에서 장(醬)을 담그는 수고를 덜고 도시 미관도 해치는 비위생적인 장독대를 없애는 대신, 이를 공업화하여 시판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사 먹자는 캠페인이었다. 이는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의 등장과 관련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부들의 노동력을 산업 현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정의
1968년,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장독대를 없애는 대신에 공업화하여 시판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사 먹자고 추진한 사회 운동.
발단

1968년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김현옥(1926~1997) 서울 시장은 가정에서 장(醬)을 담그는 수고를 덜고 도시 미관도 해치는 비위생적인 장독대를 없애고자 이른바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벌였다. 박정희 정부의 서울 개발 계획을 진두지휘해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김현옥은 ‘장독대 없애기’를 목표로 야심찬 계획들을 발표하였다. 이 ‘장독대 없애기 운동’은 농촌에서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데 일손이 묶여 사람들을 새마을운동으로 동원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장독대가 아파트 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을 주며 문화 생활을 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며 비과학적이고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0년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는 와우아파트가 붕괴되었었는데, 그 원인을 베란다 장독대 하중이라고 진단하여 아파트에 있는 된장, 고추장 장독 항아리를 단속하는 등 ‘장독대 없애기 운동’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였다.

경과 및 결과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은 공동 주택의 취지에 맞게 생활 습관도 바꿔야 하는데 집집마다 장독을 갖고 들어가 장을 담가 먹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 김현옥 시장의 주장이었다. 또한 김현옥 서울 시장은 아파트 주민과 일반 영세민 등 약 1만여 명을 대상으로 공급하게 될 순 한국식 된장 · 간장 공장도 시비 5,000만 원을 투자하여 세웠다. 김 시장의 장독대를 없애고 가정주부들의 노고를 덜기 위한 이 계획은 시에서 직접 주관하며 점차적으로 건전한 민간 업자의 투자를 권장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21동의 아파트 지역에 각 지역별로 월동용 김장 김치를 공급할 수 있는 소규모 단위의 김치 공장도 아울러 세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때 농림부도 1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규모 농촌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선간장 공장을 짓도록 하였다. 결국 장이나 김치를 집에서 직접 담그는 대신 공장에서 대량으로 공급하고 가정에서는 조금씩 사서 먹자는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하지만 당시 각종 장류와 김치를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었고, 지역, 가정마다 맛의 특색이 있으며, 사서 먹는 가격이 부담되어 쉽게 문화를 바꿀 수는 없었다. 이 ‘장독대 없애기 운동’은 1968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다 차츰 사라졌다.

장독은 각종 장류와 김치를 보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 입주자는 어떻게든 장독 공간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장독을 고이 아파트까지 챙겨 간 입주민들은 궁여지책으로 베란다에 장독을 늘어놓았기 때문에 베란다에 하중이 지나치게 실리는 데 따른 안전 문제가 제기되었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베란다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김치나 장이 금세 시어 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장독은 이후에도 아파트 발코니 한 곳에 쭉 자리 잡고 있다가 김치냉장고의 보급과 함께 최근에야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의의 및 평가

새끼줄로 메주를 메달아 곰팡이가 필 때까지 말리다가 옹기에 소금과 물을 넣고 자연 바람을 맞히며 겨우내 기다리며 담가 왔던 과거의 간장만이 진짜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하는 간장 제조 기술인 ‘산 · 효소 분해 간장’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이용해 만드는 자연 발효 역시 나름의 단점이 존재한다. 안전하고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만 하는 산업화 사회에서는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된 미생물 종국을 순수하게 관리하며 식품을 생산할 때 접종해 일정한 맛과 향, 품질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장독 등 토기(土器)를 내세우며 과학의 산물인 현대 용기들을 폄하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과학 기술과 장비가 없어 흙으로 만든 옹기 밖에는 만들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녹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스틸이나 가볍고 내구성 좋은 알루미늄, 플라스틱 용기는 가히 식품업계의 산업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나름의 장점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주영하 외, 『음식구술사-현대 한식의 변화와 함께 한 5인의 이야기-』(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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