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년(金淑年)은 1934년 3월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서예가 경인(褧人) 김문현(金文顯, 19131974)의 장녀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튼눈, 당호는 정혜당(靜慧堂)이다. 김창집(金昌集)의 6형제 중 막내 김창립(金昌立)의 후예로서 순조(純祖)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福溫公主)의 남편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 18191853)의 6대손이다. 고조부 김석진(金奭鎭, 18431910)은 고종 때 형조판서를 지냈고, 조부 김윤동(金潤東)은 창문여자고등학교 설립자이다. 한글 서예가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은 그녀의 작은 아버지이다. 김숙년은 도봉구 번동에 위치한 ‘오현(梧峴)’에서 집안 어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랐다. 오현은 창녕위 김병주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자, 김석진이 한일합병에 항거하여 순국 자결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김숙년은 1957년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전공이 아닌, 어려서부터 어깨 너머 배운 서예로 국전에서 입선한 이력을 바탕으로 졸업한 해에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서예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73년부터 1996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창문여자고등학교에서 가정과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는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등 집안 어른들과 대가족 생활을 하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반가에서 왕가에 이르기까지 예절과 법도, 의식 등을 체험하며 성장하였다. 반가에서 먹고 자란 그는 음식의 맛과 조리법을 기억하고 재현하고 정리하면서 서울 반가 음식의 계승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정년 퇴임 이후 본격적으로 저술과 강연 활동 등을 통해 반가 음식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였다.
김숙년은 대가족이 생활하던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음식의 맛과 조리법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반가 음식의 조리법을 정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요리책 『맛깔난 서울반찬』과 『김숙년의 600년 서울 음식』을 집필하였다. 이 책들은 전통 요리 연구가들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 외 저서로 『아버지, 유채꽃이 참 고와요』, 『오현(梧峴)에 드네』 등 수필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