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순(韓熙順, 1889~1972)은 1889년 서울 왕십리에서 농사를 짓던 한만희(韓萬熙)의 맏딸로 태어났다. 1901년 13세에 입궁했으며, 궁궐 소주방 나인 시절부터 나중에 고종의 후궁이 되는 광화당 이씨(光華堂 李氏), 삼축당 김씨(三祝堂 金氏)와 친해 평생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삼축당 김씨와는 같은 방에서 지낸 방동무였다. 창덕궁 낙선재에서는 궁녀인 김명길(金命吉), 박창복(朴昌福), 성옥염(成玉艶)과 함께 남은 왕실 가족을 모셨다. 한희순은 순종효황후 윤씨가 승하한 1966년에 퇴궁을 한 이후 조카 한춘남(韓春男)의 집에서 살다가 84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희순은 1901년 13세에 궁궐에 입궁하여 1966년까지 덕수궁, 경복궁, 그리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왕실 가족의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 궁녀로서 일했다. 1919년 고종(高宗)이 승하한 뒤 금곡릉(金谷陵)에서 3년상을 받들고 돌아와 순종(純宗)과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尹氏)의 일상 음식을 맡았다.
한희순은 1955년부터 숙명여자전문학교 가정학과에 특별 강사로 임용되어 1967년까지 궁중음식을 강의하였다. 60여 년 동안 궁궐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궁중음식 조리법, 언어, 문화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당시 숙명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였던 황혜성이 한희순에게 배운 궁중음식을 정리해 1970년 12월 지금의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인 문화재관리국에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1971년 1월 6일 한희순이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궁중음식을 본격적으로 전수 교육하기 위해 같은 해 5월 설립된 궁중음식 연구원에서 초대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희순은 평생 궁궐의 음식을 담당해 온 궁녀로서 사라지는 왕실의 음식을 문화유산으로 남기며,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한희순이 오랜 기간 궁궐에서 익힌 일상식과 의례음식을 제자인 황혜성과 이혜경이 정리해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考)』라는 요리책을 1957년에 펴냈다. 이 책에는 어상, 수라상, 큰상, 젯상 등 궁중 상차림의 종류와 음식 구성을 비롯해 200품이 넘는 음식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또 음식과 조리법, 식기명, 조리 용어, 식습관에 이르기까지 600여 가지 궁중 용어를 실었다.
이 책은 남성 조리사인 숙수(熟手)와 소주방 궁녀들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서만 전수되던 궁중음식과 조리법의 실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록으로 남긴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한희순은 왕실 가족의 실제적 일상 음식 조리법을 전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