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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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궁중음식 / 수라상
조선왕조 궁중음식 / 수라상
식생활
개념
궁중에서 만들어서 먹던 음식.
내용 요약

궁중음식은 궁중에서 만들어서 먹던 음식이다. 지존을 모시던 궁중에서 좋은 재료·솜씨가 하나가 되어 특별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켰다. 전문조리사가 개발하고 전수해 온 이 궁중 음식문화는 잔치 때 반기라는 풍습으로 사대부에게 전해지고 이는 다시 서민에까지 전달되어 우리 음식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새벽에 탕약이 없는 날에 차리는 초조반을 비롯하여 아침·저녁에 올리던 수라상, 점심의 낮것상 등 임금을 위한 음식과 각종 왕족 연회 및 제례에 준비하여 올리던 궁중음식은 그 종류도 다양하여 오래된 우리 전통 음식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목차
정의
궁중에서 만들어서 먹던 음식.
내용

왕족은 왕권사회에서는 특권계급으로 군림하였으므로 식생활 양식 및 제도가 가장 발달되고 엄격하였다. 궁중에서는 음식을 한 곳에서 만들지 않는다. 중궁전 · 대비전 · 세자빈의 전각 등 각 전각마다 주방 상궁이 딸려서 각각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각 전각의 음식을 만드는 부서로는 생과방(生果房)과 소주방(燒廚房)이 있었다. 생과방은 평상시의 수라 이외에 제호탕 · 잣죽 · 깨죽 · 타락죽 등과 각종 전과, 식혜 · 다식 · 등 음료와 과자를 만드는 부서로, 잔치 음식의 다과류도 이곳에서 만들었다. 소주방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으로 나누어진다. 내소주방은 조석수라를 관장하는 곳으로 주식에 따른 각종 찬품을 맡았다. 외소주방은 잔치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서, 궁궐의 다례나 대소 잔치는 물론 웃사람의 생일에도 잔칫상을 차렸다. 이밖에 잔치를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는 숙설소(熟設所)가 있었다.

궁중의 식생활 풍속은 조선조의 몰락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국가에서는 1971년 조선조의 궁중음식을 보존하기 위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조선시대 궁중음식은 다음과 같다.

(1) 초조반

새벽에 탕약이 없는 날에는 죽상을 차린다. 죽은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재료를 넣고 끓인다. 왼죽(粒粥 입죽) · 흰죽 · 전복죽 · 원미죽 · 장국죽 · 버섯죽 · 잣죽 · 타락죽 · 깨죽 등이 있다. 죽에 따르는 반찬은 젓국 조치동치미 · 나박김치 · 마른찬 · 간장 · 소금 · 등으로 간단하게 차린다. 죽은 병자음식이 아니라 보하는 음식으로 중요한 것이다.

(2) 수라상

임금과 중전이 평소에 아침과 저녁으로 받는 밥상의 이름이다. 아침수라는 10시경, 저녁수라는 오후 6∼7시경에 받는다. 수라상은 12가지 반찬으로 정해져 있으며, 그 반찬의 내용은 계절에 따라서 바뀐다. 수라상차림은 기본음식과 반찬으로 나눌 수 있다. 기본음식에는 · · 찌개 · (또는 ) · 전골 · 김치 · 이 있다. 반찬은 12가지를 올린다.

밥은 흰쌀밥과 팥밥, 두 가지를 올린다. 팥밥은 붉은 을 삶은 물을 밥물로 하여 지은 것으로 홍반이라 한다. 밥은 왕과 왕비용으로 곱돌솥에 안쳐서 화로에 참숯을 피워 짓는다. 국은 흰수라에는 미역국, 팥수라에는 곰탕을 끓여 국그릇에 담는다. 수라상 원반에는 흰밥과 미역국을 짝으로 올리고, 팥밥과 곰탕은 책상반에 놓았다가 원하면 바꾸어 올린다.

찌개는 맑은조치와 토장조치의 두 가지를 작은 뚝배기에 끓여서 그대로 올린다. 또는 조치보에 옮겨 담아 올린다. 맑은조치는 간을 소금 · 새우젓국 · 간장 등으로 맞추고, 토장조치는 된장이나 고추장으로 맞춘다. 국 건더기는 무엇이나 쓸 수 있다. 찜이나 선은 한가지만 만든다. 찜은 동물성 식품을, 선은 식물성 식품을 주재료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전골도 주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즉석에서 볶아서 익혀먹는 음식이므로 반드시 화로나 풍로에 숯불을 피우고 전골틀 또는 냄비를 준비한다. 재료는 각각 양념하여 에 담고, 참기름종지에, 장국은 귀대접에 담아서 책상반에 준비한다. 식사 중에 수라상궁이 볶아서 공기나 빈 보시기에 덜어서 대접한다. 전골틀은 무쇠나 은도금한 구리그릇으로 모양이 벙거지꼴로 되어 있다. 가장자리는 번철처럼 고기를 볶고, 중앙은 깊어서 국물을 끓이며, 채소나 날계란을 익혀서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그릇이다.

김치는 동치미 · 배추김치 · 깍두기 등 세 가지를 차린다. 계절에 따라 재료와 김치 종류도 바꾸어 만든다. 장류는 필요한 종류를 종지에 여러 개를 담아서 놓는다. 간장 · 초장 · 초고추장 · 새우젓국 · 겨자즙 등이다. 숭늉이나 차수(오곡차)를 대접 또는 차관과 찻주발과 같이 곁상에 준비한다.

반찬은 조리법과 주재료가 겹치지 않게 12가지를 만든다. 그 12가지는 고기 · 생선 · 산적 · 누름적 등 더운구이, · 더덕 · 북어 등 찬구이, 전유어(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입혀 기름에 지진 음식),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편육, 나물, 생채, 조림, 젓갈, 장아찌 등의 마른찬과 수란 · · 강회 등의 별찬에서 두 가지이다.

수라상은 왕과 왕비가 같은 온돌방에서 각각 받는다. 동쪽에 왕, 서쪽에 왕비가 앉는다. 왕과 왕비는 겸상을 하지 않고 각각 상을 받는다. 시중을 드는 수라상궁도 각각 세 사람씩 대령한다. 수라상은 주칠(朱漆)한 대소 원반(圓盤) 두 개와 옻칠한 책상반 하나로 이루어진다. 대원반은 왕이나 왕비 앞에 놓이고, 그 오른쪽에는 작은 원반이 놓이고 그 뒤로 책상반이 놓인다. 대원반에는 대전이 쓸 은제 잎사시(수저) 두 벌을 오른쪽으로 나란히 놓고, 왼쪽에는 토구(吐口) 또는 비아통이라 부르는 그릇을 놓는다. 이것은 넘기지 못하는 뼈 · 가시 등을 버리는 그릇으로, 뚜껑을 열고 버린 다음 다시 뚜껑을 덮어 항상 닫아놓는다.

소원반에는 은제 잎수저 한 벌, 상아젓가락과 양사시를 한 벌 놓고, 공기와 공접시를 세 벌씩 놓아 기미상궁과 수라상궁이 시중들 때 쓴다. 책상반에도 은제 잎숟가락과 상아젓가락을 각 한 벌씩 전골용으로 놓는다. 잎숟가락은 버들잎처럼 조금 길쭉하게 생긴 것을 말한다. 옛날 숟가락의 모습이다. 궁중에서는 사철 은수저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직접 먹는 숟가락은 나뭇잎 모양의 숟가락을 쓰지만, 전골을 볶거나 음식을 덜 때에는 양사시를 쓴다. 이것은 조선 말기에 개화되면서 서양음식이 궁중에 들어온 다음에 이용하게 된 것 같다. 상아젓가락은 중국을 거쳐 들어온 무역품이다. 수정과나 식혜를 마실 때는 백자나 청백자로 만든 숟가락을 쓴다. 이것은 중국 것을 닮아 길이는 짧고 오목하며 투박하게 생겼다. 궁중에서는 오월 단오부터 팔월 추석 전까지는 자기를 쓰고, 가을 · 겨울에는 은기나 유기를 쓴다.

음식의 배치는 대원반의 앞줄 왼쪽에 밥, 오른쪽에 국을 놓고, 그 옆으로 은잎사시 두 벌을 놓는다. 그 뒷줄은 왼쪽으로부터 토구 · 청장 · 초장 · 초고추장 · 젓국 · 겨자즙 등이 놓인다. 중앙에는 장아찌 · 채소 · 젓갈 · 편육 · 구이가 놓이고, 뒷줄에서 두번째는 채소 · 마른찬 · 조림 · 전유어가 놓인다. 가장 뒷줄에는 깍두기 · 젓국지 · 동치미가 놓인다. 곁반인 소원반에는 앞줄 왼쪽부터 전골함 · 팥수라 · 은사시 · 양사시 · 상아사시가 놓인다. 그 뒷줄에는 별식 육회 · 수란 · 은공기 세 개가, 맨 뒷줄에는 차관 · 찻주발 · 사기 공접시 세 개가 놓인다. 책상반에는 앞줄 왼쪽부터 곰탕 · 찜 · 더운구이, 뒷줄은 젓국조치 · 고추장조치 · 전골이 놓인다.

각 상 앞에는 상궁이 한 사람씩 앉아서 시중을 든다. 소원반 앞에는 노상궁이 기미상궁으로 앉아서 왕이 음식을 들기 전에 먼저 검식(檢食)을 한다. 기미상궁은 왕이나 왕비를 어릴 적부터 모셔온 사람이 맡는다. 중전의 기미상궁은 보통 시집오는 날에 친정에서 함께 들어온 상궁이 맡는다. 대원반의 곁에는 수라상궁이 왕과 마주 앉아서 수라상 식기의 뚜껑을 열고 시중을 든다. 수라시중을 드는 순서는 처음에 수라 휘건(揮巾 : 수건)을 앞에 대어 드리고 협자(挾子 : 핀 같은 것)로 끼운다. 반상기 뚜껑은 종지부터 찬그릇 · 김치그릇 · 더운 음식의 순서로 연다. 책상반 앞에 앉은 수라상궁은 풍로에 전골틀을 얹어 놓고 전골을 볶아서 올린다. 더운 음식을 받아 놓았다가 원반으로 옮기는 일을 한다.

식사법은 먼저 숟가락을 들고 동치미 국물을 한 수저를 떠서 마신 다음, 밥을 한술 떠 넣고 국을 한술 떠서 같이 먹는다. 다음부터는 밥을 한술 떠 넣고, 수저는 밥그릇에 걸쳐놓은 채로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한 가지 집어넣고 씹어서 삼킨다. 젓가락은 다시 상에 놓는다. 국에는 밥을 조금 말아서 다 먹고 나면 그 국그릇과 지금 사용한 수저 한 벌은 내린 뒤에 다른 한 벌의 수저를 사용한다. 이번에는 밥과 반찬을 계속 먹다가 끝날 때에 숭늉대접을 국그릇 자리에 올리면 밥을 한술 말아서 개운하게 먹고 수저를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3) 낮것상

점심을 궁중에서는 낮것이라 한다. 평일에는 과일 · 과자 · 떡 · 화채 등의 다과반 차림을 하거나 미음 · 응이를 차린다. 종친이나 외척의 방문이 있을 때는 장국상을 차린다. 장국상에는 온면과 편육 · 전유어 · 배추김치(또는 장김치 · 나박김치) 등을 간단하게 차린다. 장국상을 물리면 반드시 다과상을 올리는데, 보통 떡 · 과자 · 과일과, 음료로는 따뜻한 차나 화채 · 수정과 · 식혜 등을 계절에 따라 변화있게 마련한다.

궁중에서 가례 · 등극 등 경사가 있을 때는 의례를 거행하고 잔치를 베푼다. 그 규모에 따라서 진연(進宴) · 진찬(進饌) · 진작(進爵)으로 불린다. 진연은 나라의 일로 경사가 있을 때에 대궐 안에서 베푸는 잔치이고, 진찬은 왕족간에 경사가 있을 때에 베푸는 잔치로 진연보다는 의식절차가 간단하다. 진작은 진연절차 가운데 축하하는 술잔을 올리는 절차이다. 진연을 베풀 일이 생기면 수개월 전부터 택일하고 자리를 정하고, 기명과 음식재료를 준비하고, 초청할 손님을 결정하는 등 여러 가지의 준비를 한다.

잔치 준비를 위하여 진연청이라는 관아를 설치하고 진연도감(進宴都監)을 임명한다. 음식을 만드는 곳은 숙설소 또는 주원숙설소(厨院熟設所)라고 하여 가옥(假屋)을 지어서 썼다. 그 규모는 무려 190칸이나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숙수도 100인이나 되었다고 한다. 진연을 베풀기에 앞서 여러 번에 걸쳐 예행연습을 한다. 진연날에는 잔치를 치르는 전각에 여러 기명들을 배설한다.

1848년(헌종 14)의 대왕대비의 육순잔치 기록을 참고로 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동조 어좌(東朝御座) : 임금 또는 잔치의 주인공이 앉는 자리로, 대청 중앙에서 남향으로 설치한다.

② 용평상(龍平床) : 용상을 안치할 자리.

③ 납교의(鑞交椅) : 이동하여 가지고 다니는 의자.

십장생 병풍.

⑤ 만화방석(滿花方席).

⑥ 표피방석(豹皮方席).

⑦ 채화안식(彩花案息).

서안.

⑨ 서병.

⑩ 보안(寶案) : 자주색 명주보(明紬褓)와 홍색 명주상건(明紬床巾)으로 높은 상의 다리가 보이지 않게 덮는다.

⑪ 향좌아(香座兒) : 향꽂이 한 쌍과 대주향(大炷香) 한 쌍.

⑫ 노연상(爐烟床) : 자주색 명주보를 덮고 홍색 명주보를 두른다. 향로 한 쌍과 향합 한 쌍, 주향 한 쌍이 놓인다.

⑬ 찬안(饌案) : 주칠한 네모난 상으로 도홍색 운문 을 덮고 둘레는 초록색 운문단으로 두른 다음에 곡수각장좌면지(曲水各張座面紙 : 두꺼운 유지)를 깐다. 두석인자(豆錫引子)와 추자(推子)는 놋쇠로 만든 기구로, 그릇을 배설할 때에 적당한 자리로 잡아당기거나 미는 데 쓰는 것이다.

⑭ 협안(狹案) : 주칠한 상을 찬안 좌우에 놓는다. 곁상으로 찬안과 똑같은 상보를 깔고 둘레도 찬안과 같은 감으로 두르며 좌면지도 깐다.

⑮ 수주정(壽酒亭) : 주칠한 아가상(阿架床)에 홍색 수주보(水紬褓)를 덮고 용준(龍樽 : 술항아리)과 용준을 올려놓을 준대(樽臺), 은병(銀甁)과 은작(銀勺 : 용준에서 술을 퍼 은병에 붓는 잔) · 옥배(玉杯 : 옥술잔) · 서배(犀杯 : 뿔소의 뿔로 만든 술잔) 및 은도금한 잔대를 놓는다.

⑯ 다정(茶亭) : 주칠한 아가반에 시접반(匙楪盤)을 겸설한다. 상 위에는 홍색 수주보를 덮고 곡수각장좌면지를 덮는다. 소원반 하나를 올려놓고 그 위에 은다관(銀茶灌)과 은다종(銀茶鍾)을 놓고 홍색 저포보(苧布褓)로 덮는다. 시접반에는 은시접(銀匙楪 : 은대접에 은수저 한벌)과 은령롱시(銀玲瓏匙 : 조그만 은숟가락) · 은소아(銀召兒 : 은보시기) · 은저(銀箸)를 놓는다.

⑰ 진작안(進爵案) : 주칠한 높은 상으로 술잔을 올리는 상이다.

⑱ 휘건함탁(揮巾函卓) : 홍색 수주보를 덮고 남홍운문 갑사(藍紅雲紋甲紗) 세폭을 두른다. 갑휘건(甲揮巾 : 겹수건)을 주칠함에 담고 홍색 명주보로 덮는다.

⑲ 치사전문봉치안(致詞箋文捧置案) : 한좌 위에 주칠한 찬품단자함(饌品單子函)을 겸설한다. 상은 홍색 수주보로 덮는다.

⑳ 목화룡촉(木畫龍燭) : 두석대촉대(豆錫大燭臺)와 촉대부(燭臺跗 : 촉대를 세우는 받침) 2좌에 각각 촉대를 매는 홍색목면(紅色木綿) 두필을 네 끝으로 맨다. 촉대에 화촉(畫燭 : 그림을 그린 초)과 용촉(龍燭 : 용트림모양의 초)을 한 쌍 꽂는다.

㉑ 준화(樽花) : 주칠한 준화대(큰 꽃병받침)에 당화준(唐畫樽 : 중국풍의 그림을 그려서 구워낸 꽃항아리)을 얹고 항아리에는 백미 한 섬을 담고, 조화(造花 : 얇은 비단으로 만든 꽃)로 홍도 한 가지, 벽도 한 가지를 꽂고 꽃병을 맬 홍수아주(빨간 고운 명주) 두 필과 홍융사(紅絨紗) 세겹실 한 타래를 준비한다.

㉒ 산화(散花) : 꽃병에 꽂는 꽃보다 작은 가지로 된 조화 열 가지. 이밖에 축하를 드릴 사람은 치사문을 담은 치사함과 축화(가는 철사에 비단을 감고 비단으로 만든 조화)를 담은 진화함을 준비한다. 축하를 받을 사람은 치사문을 받아 놓을 치사전문봉치함(致詞箋文俸置函)과 꽃을 받을 사권화함(絲圈花函)과 술잔을 받을 진작안을 준비한다.

주인공이 대비 · 대왕대비인 경우에는 왕과 왕비는 대청 밖에 좌우로 따로 자리를 잡고 차비를 차린다. 잔칫상을 받기 전에 차리는 음식의 이름을 쓴 찬품단자를 받는다. 찬품단자는 색색으로 물들여 다듬질한 선자지에 쓴 것이다. 받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색을 달리하였다. 1870년(고종 7)에 있었던 조대비의 육순잔치의 기록을 보면 대왕대비는 황색, 임금은 홍색, 중전은 청색, 대원군은 보라색, 부대부인은 짙은 초록색을 받았다. 찬품단자는 두루마리로 접는 경우도 있고, 병풍처럼 접는 경우도 있다. 봉투는 두루마리와 같은 색종이로 만들고 겉에 받는 사람의 칭호를 적는다.

잔칫상은 의식절차에 따라 여러 번 받는다. 조대비의 육순잔치 때에 조대비가 받은 상은 진어찬안(進御饌案) · 진어미수(進御味數) · 진어소선(進御小膳) · 진어대선(進御大膳) · 진어염수(進御鹽水) · 진탕(進湯) · 진만두(進饅頭) · 진다(進茶) · 진어별찬안(進御別饌案) · 진어과합(進御果榼) 등 열 번이나 된다. 대왕대비 · 임금 · 중전은 똑같은 내용의 상을 받고, 그 아래의 공주 · 옹주 · 내빈 · 외빈 · 내명부 · 외명부는 상상(上床) 또는 당랑상상(堂郎上床)을 받는다.

문안을 든 각 신하에게는 반사연상(頒賜宴床)이 차려진다. 그 아래 규모로는 중상 · 하상이 있고, 별시령 이하는 지금의 교자상차림의 반사도상(頒賜都床)이 주어진다. 내시 · 입직장관장모 · 원역 · 별감 · 악공 · 여령에게는 상반 · 중반 · 소반 · 대우판 · 중우판 · 소우판 · 쟁반차림이 주어진다. 입직군병과 숙수에게는 흰떡 세개, 산적 한 꼬치, 청주 한 잔의 궤찬(饋饌)이 주어진다.

연회상 차림은 높이 괴는 고배상차림이 원칙으로, 연회의 규모나 상을 받는 신분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보통 높이는 30∼90㎝ 정도이다.

(1) 어상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임금이 받는 상으로 망상(望床)이라고도 한다. 음식을 높이 괴어서(高排) 상화(床花)로 화려한 장식을 한 다음 진찬한다. 고배는 잔치의 규모에 따라 그 높이가 달라진다. 일정한 제약은 없다. 축하의식이 끝나면 고배한 음식을 종친과 당상관의 집으로 고루 하사한다. 고배한 음식은 헐지 않고 부도지로 싸서 가자(架子)로 실어낸다. 이와 같이 음식을 하사한 외척이나 종친 · 사대부집에서는 궁중음식을 맛보고 그것을 모방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 혼인잔치 · 회갑잔치에 고배하는 것도 궁중연회의 고배음식을 차리는 풍습을 모방한 것이다.

(2) 입맷상

경축하는 잔치에 의례로 차리는 상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 먹는 것이 아니므로 본인이 직접 먹을 수 있는 상을 차린다. 이것을 입맷상 또는 몸상이라고 한다. 평소의 장국상보다는 안주를 더 놓고 크게 차린다.

(1) 꽃놀이

삼월 삼짇날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면 비원의 옥류천 가에서 화전놀이를 한다. 찹쌀가루 · 참기름 · 꿀을 마련하고 번철 · 수저 · 채반을 갖추어 야외에서 음식을 마련하여 즐겼다.

(2) 수렵잔치

동지가 지나서 셋째 미일(未日)을 납평이라 한다. 나라에서는 사직단태묘에 납평대제를 지낸다. 이때는 날고기를 제물로 쓰므로 노루 · 사슴 · 메추리 등을 사냥한다. 이때에 이 사냥한 고기를 가지고 납평전골을 만들어 진상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3) 천 신

천신은 자손이 효성을 다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으로, 식품이 처음 나왔을 때 조상에게 바치는 것이다. 이렇게 바친 음식을 가져다가 자손들이 음복한다. 종묘에 천신하는 음식은 다음과 같다. 1월에는 조곽(정월에 따서 말린 미역), 2월에는 생합 · 생낙지 · 생전복 · 빙송어(氷松魚) · 수조(미나리) · 반건치(半乾雉) · 당귀싹 · 작설차, 3월에는 황조기 · 수조기 · 누치 · 웅어 · 고사리 · 승검초나물 · 청귤, 4월에는 준치 · 오징어 · 자라 · 죽순, 5월에는 농어 · 보리 · · 오이 · 앵두 · 살구, 6월에는 올벼 · 수수 · · 기장 · 쌀 · 오얏 · 능금 · 동아 · 참외 · 은어, 7월에는 연어 · · 청포도 · 호두 · · 개암 · 연실을 천신한다.

8월에는 · 붕어 · 송이 · · 대추 · 홍시 · 신도주, 9월에는 석류 · 머루 · 천도복숭아 · 기러기, 10월에는 감자 · · 곶감 · 은행 · 유자 · · 은어 · 대구 · 문어, 11월에는 임연수어 · 청어 · 백어 · 백조, 12월에는 동정귤 · 유감(乳柑) · 당유자 · 숭어 · 토끼를 천신한다.

궁중은 지존을 모시는 곳이므로 좋은 재료와 좋은 솜씨가 하나가 되어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 왔다. 일반 서민음식과 다른 궁중음식의 특징은 간이 짜거나 맵지 않은 것이다. 다만 섞박지와 깍두기를 맵게 만들 뿐이다. 이는 민간에서는 얼큰한 맛을 즐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궁중음식은 전문조리사에 의하여 조리기술이 개발되고 전수되어온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이렇게 개발된 음식은 잔치 때 반기라는 풍습으로 사대부에 전해지고 이는 다시 서민에게까지 전달되어 우리의 음식에 영향을 주었다. 민가에서 혼례나 회갑 때 고배상차림을 하는 것도 궁중연회의 고배상차림이 전파된 것이며, 또 조상을 받드는 행사인 제례종묘제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궁중음식은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의 정수이다. 현대와 같이 식생활문화가 큰 변혁을 겪고 있을 때에 잘 보존하여 우리 식생활문화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속대관』 2(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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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황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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